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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고갱이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07.11.01 21:22 수정 2007.11.01 09:18

임술랑 (시인)

↑↑ 임술랑 (시인)
ⓒ 성주신문
배추 고갱이 한 입에 씹어 삼키는 일 두렵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어떤 세상
송두리째 부서지는 것 같습니다
고소한 세상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껍질을 벗기면 나타나는 작은 세상
그의 소중한 얼입니다

배추 고갱이를 한 입에 우겨 넣기는 참말 두렵습니다


- 시집 『상 지키기』(모아드림,200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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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랑 시인은 상주 시인이다. 상주에 가면 <모심기 노래>가 어떻게 이 들판에서 나왔는지, 상주에 왜 <들 문학회>가 있을 수밖에 없는지 금세 깨닫게 된다. 아직 청정하고 푸른 들판에 속한 생명들이 사람을 낳고 노래를 낳고 노래꾼(시인)을 낳았다.

배추는 우리 겨레의 몸의 정기를 맑고 깨끗하게 지켜 온, 벌레와 사람이 나눠 먹는 푸른 푸성귀다. 배추를 벗기다 보면 나타나는 노란 고갱이 - 한 입에 톡 털어 넣으면 고소하고 흙의 상큼하고 정결한 기운이 온 입안에 가득해 지는 고갱이를 시인은 입 안에 그냥 우겨넣지 못한다. 하나의 세상이 부서지고 마는 것 같은, 그의 얼이 송두리째 삼켜지고 말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배추 한 포기에 담긴 얼을 찾아내고,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렇다. 임술랑 시인은 세상과 생명을 아는 흙의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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