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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09.08.27 10:38 수정 2009.08.27 10:47

고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 성주신문

우리의 ‘마을’은 우리 삶의 진원지다. 星州人들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면서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유구한 세월의 흐름만큼 마을에서는 전통의 향기가 베어나고 주민들에게서는 훈훈한 인정이 쌓여갔다. 성산가야의 옛 도읍지로 찬란했던 가야문화의 맥이 면면히 흐르는 유서 깊은 고장 星州. 예향이자 백두대간의 끝자락이 감도는 반도의 길지 성주의 오롯한 역사는 이 ‘마을’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이에 오늘의 성주를 있게 한 근본 터전인 마을을 둘러봄으로써 오랜 역사 속에 품어온 성주를 제대로 그려내, 문화 성주로의 면모를 새롭게 함은 물론 지역의 소중한 문화와 역사를 대내·외에 올바로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편집자주】

■목우물(項井) 마을을 아시나요

 
↑↑ 목우물 마을 입구.
ⓒ 성주신문 
성주읍 중심부에서 서북부로 벽진 방향의 30번 국도를 따라 약 1.5km 정도 가다보면 우측에 평화로운 마을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성주읍 ‘백전1리’다.
백전리는 잣밖골을 漢字化하면서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 고어(古語)는 성(城)을 ‘잣’이라 했다. 星州邑城의 바깥(外)마을 즉 잣(城) 밖(外) 골(洞)을 의미했으나, 구음법칙으로 원음을 변칙표기하며 백전리(栢田里)가 됐다. 즉 잣·잣나무를 뜻하는 측백 백(栢)으로 표기되면서 지금의 마을명이 탄생한 것이다.

이 백전1리의 자연부락은 바로 목우물(項井) 마을. 지형이 목처럼 된 곳에, 읍을 나드는 행객이 목을 적셔 쉬는 우물이 많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김금용 이장은 “뜨거운 여름날이면 동네 사람들은 물론 성주를 드나들던 이들의 목을 축여주고 더위를 달랬던 마을이 바로 목우물 마을”라며 “시원한 물 한잔에 시골마을의 푸근한 인심을 가득 전했던 우물은 이제 사라지고 형체를 찾을 수 없지만 그 때의 인정만은 마을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마을앞 들 건너에는 이천이 흐르고 동편은 읍의 주맥인 완만한 구릉(표고 800m)이 대금산과 봉두산으로 멎어 있다. 앞이 창활해 서남쪽 멀리 성주의 주산인 가야산이 우뚝 바라보이고 수십리 성주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뒤 표고 90m의 언덕을 옛날에는 대금산이라 했고, 이곳은 인현산에서 내려온 읍의 주맥인 바 옛날에는 천년노송이 있어 관에서 엄히 보호했다. 이곳 비탈이 읍의 4대루의 하나인 서정의 터다. 이 곳 백전리는 고려 초에 경산부의 본아리에 따랐고 1895년(고종 32년) 본아면·백전동이 되고 1914년 성주면에 편입됐다.

■도대체 무엇을 해서 먹고살지

백전1리 주민은 7월말 현재 100세대, 234명(남 119명, 여 115명)이 있다.
이 마을은 부농에 속한다. 참외의 고장 성주답게 백전1리 역시 참외를 주작목으로 한다. 도시에서는 50대가 젊은 축에도 못 든다지만 요즘 시골이 어디 그러한가.

주민들 역시 “우리 마을은 50대 젊은층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성주읍 35개 동네 중에 참외수입이 가장 앞서가는 마을의 하나”라며 “마을 작목반 브랜드 ‘명품마을’은 참외고을에서도 고품질로 인정받아 공판장에서 기본 3∼5천원 정도는 더 받는다”고 자랑한다.

실제로 지난해 성주읍에서 1억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최고로 많이 나왔단다. 비결은 농사에 탁월한 노하우를 쌓은 데다가 신체적으로도 활동이 왕성한 50대가 많다보니 유리하고, 지역적으로도 농사에 유리한 환경이 보태졌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 고목 아래 쉼터.
ⓒ 성주신문
마을 곳곳에는 시원한 고목 그늘 아래 쉼터(정자)가 마련돼 있어 틈틈이 담소를 나누며 정을 쌓기에 제격이다. 정자 앞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내가 어릴 적부터 있던 고목인데,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어릴 적에 만난 어르신 역시 고목으로 만났다하니 참 오래 우리 곁에 그늘이 돼 주고 있지”하며 애정을 담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은 입을 모아 살기 좋은 마을자랑에 열심이다.
강소분(87) 할머니는 “나고 자란 마을을 결혼으로 잠시 떠났지만 고향을 잊지 못하고 어느새 다시 찾아와 살아가고 있다”며 “누구에게나 고향은 다 그러하겠지만 내 고향은 더욱 특별하다”고 전했다.

이봉순(83) 할머니도 “이 동네에서 60년을 살았지만, 어디하나 불편 없이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얘기했고, 정순덕(74) 할머니 역시 “마흔넷 된 넷째를 임신한 채 들어왔으니 40여년을 마을에서 지냈는데, 언제나 싫증나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한편 이 마을 최고령 어르신은 윤순득 할머니(90)다.

■우리 고민 들어보실래요

부러울 것 없다는 주민들도 소원은 있단다.
마을앞 들에 배수로 정비가 안 돼 침수피해가 잦다보니, 작물 수확기에 큰비라도 올라치면 주민들의 심장은 두근반 세근반이다. 다른 사업보다도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배수로정비 사업에 우선순위를 둬 달라는 목소리다.

 
↑↑ 마을 윗길서 성주로 나가려면 중앙선을 침범해야 한다.
ⓒ 성주신문 
목우물 마을은 국도변에 위치한다. 마을과 외부를 이어지는 입구는 두 개로, 아래쪽에서는 성주방향으로 나갈 때 도로선이 그어져 있어 나갈 수 있지만, 위쪽에는 그어져 있지 않아 공공연하게 불법 좌회전을 할 수밖에 없단다. 주민들이 법을 어기지 않고 오갈 수 있도록 도로선을 그어달라는 얘기다.

목우물의 자연의 특혜 가득한 풍광은 마을을 찾은 기자에게 절로 애정이 생겨나게 했다. 그 안에 자연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 마을. 조용한 마을을 온통 그들만의 아우성으로 채우던 강아지들. 사진 찍는 외지인을 낯설어 하다가도 설명을 들으시고 기꺼이 집 옥상을 빌려주던 주민들. 마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랑하던 할머니들. 이토록 나이 많은 사람이 뭐 알겠느냐며 손을 저으시다가도 질문에는 꼼꼼히 대답해 주시던 할머니. 떠나오는 골목 어귀에서 뒤돌아보니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고향의 풍경에 가슴이 훈훈해 진다.

※김금용 이장(56), 강소분(87)·이봉순(83)·정순덕(74) 할머니 그리고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시는 어르신들까지 마을 이야기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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