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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세종대왕의 비극적 가족사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8.03.02 09:29 수정 2018.03.02 09:29

↑↑ 전 하 수
前 성주군환경지도자연합회 회장
ⓒ 성주신문


 
세종대왕의 장남인 문종은 세번째 부인인 현덕왕후에게서 비운의 경혜공주와 단종을 두었다. 그외 후비로 귀인홍씨, 사측양씨가 있다. 사측양씨는 경숙옹주를 낳았다. 단종은 1453년에 일어난 계유정란에 의해 실질적인 권력을 잃고 다음해 정월에 송현수의 딸을 왕비로 맞이했다. 그러나 이듬해 단종은 왕위를 내놓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후 1456년 6월에 단종복위사건이 일어나 이듬해 단종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 한 달 뒤인 10월에 17세의 나이로 사사되었다.
 
단종의 부인은 송현수의 딸 정순왕후로, 두 사람 사이엔 후사가 없었다. 그의 능은 장릉으로 강원도 영월에 있다. 비극적인 삶을 산 경혜공주(1436~1473)는 7세에 현덕왕후가 죽고 16세에 정종과 결혼하였으나, 그해에 부친 문종이 죽었다. 21세에 동생 단종이 죽고 25세에 남편마저 능지처참 당하였다. 그러나 아들인 정미수는 세조의 왕후인 정의황후에 의해 보호되어 성종과 같이 살다가 나중에 중종반정의 공신이 되어 부원군에 오른다. 경혜공주는 38세에 요절한다.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은 계유정란 때 사사된다. 이후 그의 아들 의춘군 이우직 역시 연좌제에 의해 처형되었고, 아내는 관비가 되었다. 의춘군의 아내인 오대(五臺)와 딸 무심(無心) 등은 수양대군의 측근인 권람의 노비로 분배되었다. 안평은 조맹부체의 명필로 유명했다. 임영대군은 계유정란 이후 둘째 형인 수양대군을 지지하여 그를 도왔다. 9남2녀를 둔 임영대군은 예종 때의 20대 정승 구성군 준의 아버지였고, 영의정 신승선의 장인이었다. 연산군의 부인 폐비신씨는 그의 외손녀였으며, 중종의 첫째부인 단경왕후의 친정아버지 신수근은 그의 외손자였다. 광평대군은 종조부 무안대군 이방번에게 입적된다. 20세에 밥을 먹다가 가시에 걸려 요절한다.
 
세종의 여섯째아들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과 모의해 단종을 복위시킬 계획을 세우다가 거사 직전에 관노의 고발로 실패, 반역죄로 처형당하고 만다. 그는 동복형제들 중 세조의 등극에 반기를 든 유일한 인물로 남아 있다. 세종의 여덟번째 아들 영응대군은 세종의 명으로 첫 부인 대방부부인이 쫓겨난 뒤 해주정씨를 춘성부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세종은 후에 춘성부부인의 동생인 정종을 경혜공주와 혼인시키는데, 이는 영응대군이 단종의 후원세력이 되기를 바라면서 수양대군을 견제하려는 세종의 심모원려였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이를 간파하고 본부인을 잊지 못하는 영응대군을 늘 송현수(대방부부인의 오빠)의 집에 데리고 다녔다. 정난 후에 수양대군의 배려로 영응대군과 대방부부인은 결국 재결합하게 된다. 송씨는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의 누이로 단종비 정순왕후의 친 고모이기도 하다.
 
세종의 후궁자녀들도 수양대군의 계유정란에 의해 편이 갈리었다. 단종의 유모역할을 한 혜빈 양씨와 소생들인 한남군, 수춘군, 영풍군 등은 수양대군과 적대관계였으나, 노비출신으로서 세종대왕의 사랑을 받으며 8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고, 후궁 중에서 최고의 자리인 빈(嬪)에까지 올라가 행복하게 살았던 조선판 신데렐라의 주인공인 신빈김씨와 자녀들은 수양대군편으로 현달한 인물이 많다.
 
수양대군으로 인하여 세종의 자녀들은 골육상생의 아픔을 경험해야만 했다. 이후 세조와 그 자손들에게는 악업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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