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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손 수 건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8.03.02 09:38 수정 2018.03.02 09:38

↑↑ 이 현 학
행복드림공인중개사 대표
ⓒ 성주신문


 
가랑비가 이른 새벽부터 종일 내리고 있다. 먼 산은 운무에 가려 있고,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다. 산일을 하는 사람들이 힘들 듯하다.
 
지난 삼월 어느 날, 교회에서 찬양대 지휘자 집사님을 만났다.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호남형의 얼굴답게 성격 또한 시원시원하였다. 부활절 칸타타 준비를 하는데 내레이션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 년 전에도 한번 해본 적이 있는 바라 흔쾌히 하겠노라했다. 고향을 이야기하다보니 지휘자도 성주가 고향이라며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중학교 후배이라며 교회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낮춘 말을 하는 분이 지휘자였다. 고향에 생가가 있고, 산도 있다며 시세를 알고 싶어 했다. 지번을 알려 달라 했으나, 그 뒤 별다른 말이 없어 지나치게 되었다.
 
아내는 팔월부터 교회 찬양대 지휘를 맡았다. 매일 찬송가를 선곡하고, 편곡하는데 정성을 쏟는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이다.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 성도마다 맡은 바 봉사와 헌신이 따라야 한다. 아내는 피아노 연주와 성악이라는 은총을 받았기에 찬양대에서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종교이든 믿음이 신실해질수록 봉사와 헌신의 시간은 늘어난다. 봉사와 헌신이 커질수록 개인의 행복지수 또한 같이 커질 것이다.
 
아내가 찬양대 지휘를 맡게 된 것은 지휘자의 부탁 때문이었다. 두 달 전부터 눈이 침침하고 체중이 준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 전에는 처에게 한 달만 찬양대 지휘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다. 자신은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을 하며, 건강을 돌보고 오겠다고 했단다. 다들 그러한 줄 알았다. 팔월이 지나고 구월이 오면 지휘자가 돌아오리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구월이 왔다.
 
구월에 날라 온 것은 뜻밖에도 비보였다. 지휘자의 임종을 몇 시간 앞두고서 딸이 교회로 연락이 온 것이다. 누구도 생각지도 못한 비보에 다들 황망해했다. 지휘자는 올해 이월에 간암말기 판정을 받고, 6개월 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한다. 남은 이들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지휘자가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도 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평소와 동일하게 아니 더 열정적으로 찬양대를 지휘하고 헌신했다. 경산체육관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 찬양대 지휘를 맡아 훌륭히 행사를 마쳤다. 자신의 육체가 허락하는 시간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했다. 지휘자는 체력이 고갈되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때 요양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한 달여 병원에서 투병하다 영면하신 것이었다. 사망을 향한 하루 또 하루가 지나는 동안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까. 위로의 말 한마디 못한 아쉬움과 죄스러움은 회한으로 가슴깊이 남으리라.
 
어제 저녁 집으로 가니 화장대 위에 새로 산 손수건이 하나 놓여 있었다. 오늘 아침 7시에 아내를 태우고 대구의료원 국화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8시에 지휘자의 발인식이 시작되었다. 찬양대의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가족과 지인들의 울음소리가 발인식장을 적시고 있었다. 육십갑자를 채우지도 못한 영정 속 지휘자는 꽃에 둘러 싸여 환한 얼굴로 이별을 말하고 있었다. "이집사. 이제 찬양대도 하고 믿음생활 좀 열심히 해"라고 말하시는 것 같았다. 평소 찬양대하라는 말씀이 귓전을 울렸다. 새로 산 손수건이 눈물로 젖고 있었다. 손수건이 주는 의미가 새롭다. 손수건은 땀을 훔치는 데도 사용되지만, 이별을 애통해하는 순간 필요한 것이다. 눈물이 있는 곳에 손수건이 있고, 손수건이 있는 곳에 별리의 아픔이 있다.
 
장의차를 선두로 차량 행렬이 성서 이곡동 장미공원을 지나고 있었다. 비 내리는 날 장미는 색이 선명하여 더욱 아름답다. 비는 내리고, 장미는 온갖 아름다운 빛깔로 자태를 뽐내지만, 차량 행렬은 무심히 지나쳐 달려간다. 눈뜨고 보면 세상이 장미공원처럼 아름다운 천국이고, 사람마다 가장 아름다운 꽃 한 송이다. 장미가 아름답다 한들 사람만큼 아름다우랴. 사람이야말로 만 가지 얼굴로 만 가지 향기를 내뿜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리라. 아름답고 고귀한 꽃 한 송이가 생명을 다하고, 영원한 안식을 위해 고향 성주로 달려가고 있다.
 
젖은 손수건을 가만히 손에 쥐어 본다. 눈물로 떠나보낸 지휘자는 지금쯤 선산 선영에 몸을 뉘였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믿음대로 영혼은 하나님 천국에 올라가 영생을 얻었을 것이다. 손수건 같은 삶을 지향해본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아픔을 나누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손수건 같은 존재로 살고 싶다. 눈물 배인 손수건에 또 다가올 수많은 이별 앞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적셔야 할까.(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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