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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너희의 생일은 4월 5일이다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8.03.14 10:31 수정 2018.03.14 10:31

↑↑ 배 태 영
성주여중고 초창기 교감
ⓒ 성주신문


 
성주여자중학교 너의 생일은 4월 5일이다. 1955년 4월 5일, 그날은 우리 성주여중 가족들만의 경사가 아니라 온 성주군민의 축제의 날이었다. 고의환 성주군수, 김정태 경찰서장, 이종특 성주교육감을 비롯해서 배사원 성주면장, 왕예그노 레기날도 신부, 박원섭 성주의원 원장, 정상철 대구매일 지국장, 도재림 선생 등 너의 탄생을 갈망한 여러 유지들과 학부모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너의 탄생을 축하하며 "성주여자중학교 만세!"를 불렀다. 성주성당 왕 신부님이 독특한 악센트로 "성주여자중학교여 영원히 빛나라"고 한 축사가 기억에 생생하다.

개교 축하식 후에 모두 남정리 동산에 한 그루씩 기념 식수를 했다.
 
네가 잉태된 것은 1952년 봄이었다. 그때 성광중학교를 설립한 임종룡 장로가 여자중학교를 따로 하나 설립하기로 약속하고 김봉익 선생이 앞장서서 학생을 모집했다. 처음엔 성주읍교회 구건물에서 시작했다가 곧 성광중학교의 교실 하나를 빌려 성광중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수업을 했다.
 
그러다가 1953년도 1학기가 끝나면서 임종룡 장로가 약속을 어기고 우리 학생들을 모두 남녀공학인 자기네 성광중학교에 편입시키려 했다. 그러나 학생을 모집할 때 여자중학교 설립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남녀공학에 편입시킬 수 없다고 김봉익 선생이 반발해서 임종룡 장로와 결별하고 거기서 나와 책걸상을 이고 지고 성산동 살망태 주설자 씨 저택 아래채로 옮겼다. 학생수는 1학년이 30명이고 2학년이 43명으로 70명이 넘었다. 방 둘, 마루 하나에 다 앉을 수가 없어서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서 공부했다.
 
그때 그 마을에 살고 있던 류삼식씨가 그 딱한 사정을 보고, 그와 함께 '삼일제재소'와 '삼일정미소'를 경영하고 있던 김선효·조동호씨와 의논해서 그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교실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당시 배사원 성주면장에게 청원하여 면유지로 되어 있는 일제시대 신사 터를 기증받아 목조 교실 3간을 세웠다.
 
1954년 3월에 '성주여자중학원' 설립 인가를 받아 김봉익 선생이 원감이라는 직책으로 교무를 관장하며 도덕·공민을 가르치고, 최성옥 선생이 국어·가사를, 문종섭 선생이 영어·과학을, 벽진 미녀 여경숙 선생이 지리·역사를, 나는 수학을 맡고, 미술·음악 등 기타 과목은 성주국민학교 선생님들 중에서 강사로 도와주었다.
 
당시 군내 여학생들은 대부분 성주중학교나 성광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우리 학교를 찾아오는 학생들은 대개 집이 가난하거나 (공납금이 타 학교의 반도 안 됐으므로) 남녀공학을 꺼리는 일부 완고한 가정의 딸들이었다. 그러니 교사들에 대한 대우도 타 학교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격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서울대 초대총장 최규동 박사의 따님인 최성옥 선생은 이화여전 가사과 출신으로 대구의 여러 여학교에서 오라고 해도 내 고향을 지킨다면서 가지 않았다. 나도 영어·일반사회 중등교사 자격증을 둘이나 가지고 있었고, 부산 초량교회 장로인 경남교육위원회 김성태 장학관이 부산시내 학교로 발령내 주겠다고 해도 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모두가 내가 학교를 설립한다는 개척자 정신으로 뭉쳐 있었다. 학생들도 정식 중학교가 아닌 '학원'에 다닌다고 해서 '학원띠기'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는데, 그런 야유를 받으면 "공학띠기야, 우리도 곧 여자중학교로 인가 난다" 하며 기죽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것을 볼 때마다 하루 빨리 인가가 나기를 학수고대했다.
 
1955년 3월 17일 드디어 '재단법인 경심학원(耕心學園)' 설립인가가 났다. 조동호 이사가 서울에서 보낸 전보를 받고 우리는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곧 이어 3월 29일 '성주여자중학교' 인가를 받아 3학년 학생들이 중학교 이름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반의 이순영이 성주·성광 두 학교를 누르고 대구사범학교에 합격해서 경사가 겹쳤다. 서둘러 졸업식을 올리고, 4월 5일 식목일에 성주여자중학교 개교식을 거행하게 된 것이다.
 
김봉익 선생은 이것으로 자기 할 일은 끝났으니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며 훌훌 떠나고, 채명득 장학사가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협동단결·정서도야·일인일기'를 교훈으로 내걸어 현모양처로서의 부덕을 갖춘 인격 양성의 덕목으로 삼았다.
 
이듬해 네 돌 날에 '성주여자고등학교'가 태어났다. "가야나라 옛 성터에 자리를 잡고 찬란한 민족문화 이어서 받아…" 교가를 부르며 입학해서, "…협동단결 정서도야 일인일기를 나가서나 남아서나 굳게 붙잡고 언니 아우 한 그루 혼이 뭉쳐서 영원무궁 빛내리 모교의 전통." 졸업의 노래를 부르며 교문을 나선 세월이 쌓여 어언 환갑을 지난 오늘, 학교 운영 재단이 몇 번이나 바뀌면서 교훈도 바뀌고 졸업의 노래도 바뀌고 심지어 학교 생일인 개교기념일 마저도 바꿔놓았다.
 
하지만 성주여자중·고등학교 너희의 진짜 생일은 4월 5일이다. 생모는 '학교법인 경심학원'이고 경심학원 설립자는 김선효·류삼식·조동호 이사이다. 해마다 4월 5일 식목일이 돌아오면 그 옛날 그날을 기념해 심은 남정리 동산의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며 이날이 우리 생일인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2018.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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