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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당랑거철(螳螂拒轍)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8.03.28 09:11 수정 2018.03.28 09:11

↑↑ 이 현 학
행복드림공인중개사 대표
ⓒ 성주신문
 
"새 보금자리에서 잘 살아라"
 
풀숲으로 사라져 버리는 사마귀를 보며 혼자 중얼거려 본 말이다. 오늘 아침 차를 몰아 수성인터체인지를 지나며 룸미러를 보았더니 사마귀 한 마리가 뒤 유리창에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조금 황당하기도 하면서 호기심도 들었다. 차는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하였기에 차를 세울 수도 없었다. 시속 100km 이상 달리는 상태에서 사마귀가 바람에 날려 다칠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였다.
 
어찌하여 사마귀는 유리창에 붙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을까! 아마 간밤에 차 뒷유리에 내려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차는 출발하고, 속도는 점점 빨라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리의 힘을 모아 유리창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유리창에서 떨어지는 순간 태풍과도 같은 바람에 날려 절명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사람도 예기치 않는 운명에 묶여 꼼짝 못하고 영 엉뚱한 방향으로 인생이 달려가는 경우가 있다. 서울행 버스를 타고 있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부산행 버스를 타고 있는 격이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도착할 때까지 몸을 맡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몽고로 끌려 간 포로들, 스탈린의 이주정책으로 사할린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조선인들, 북으로 끌려 간 납북포로들의 인생이 그리 하였을 것이다.
 
차를 주행하며 가끔씩 사마귀가 궁금하여 룸미러를 쳐다보았다. 사마귀는 미동도 하지 않고 거센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였다. 한낱 미물인 사마귀의 생존의지에 경외심까지 들었다. '언제까지 버틸까?' 하는 호기심도 들었다.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마귀를 보며 '나는 인생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 인생에 저 사마귀처럼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해 본적이 있었던가! 내 인생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꼽으라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 외에는 모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공부, 사랑, 직장생활, 자영업 이 모두 나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무엇 하나 사마귀처럼 목숨 걸고 사력을 다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늘 후회가 되고 미련이 남는 것이다. 사력을 다하지 못하다 보니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만족스럽지 못하다 보니 늘 변명과 자기합리화를 하기 바빴다.
 
사마귀를 보고 있자니 강제이주 열차를 타고 카자흐스탄으로 향하고 있는 우리 민족이 떠올랐다.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을 보면 강제이주 당시의 춥고 배고픔의 참혹함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본의는 아니지만 경산을 떠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마귀를 살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낱 미물이지만 출근길 아침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교훈을 준 사마귀이지 않은가!
 
성주 사무실로 가는 계획을 바꾸어 전원주택단지로 차를 몰았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이주시켜주겠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자주 룸미러를 보게 되었다. 경산에서 성주까지 백오십리를 달려 차는 저수지 상단 전원주택에 도착하였다. 차가 멈추었는데도 사마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태풍과 같은 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여를 버틴 사마귀는 아마도 탈진 직전이었을 것이다. 사마귀를 조심스레 유리창에서 떼어 내 잔디밭에 놓아 주었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의 수레를 가로막은 사마귀의 이야기이다. 본 뜻은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허세를 부리는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를 뜻한다. 또 한편으로는 역경에 굴하지 않는 사나이의 패기를 칭하기도 한다. 수레를 가로막은 사마귀의 어리석은 용맹을 장공이 너그러이 용서하여 수레를 돌렸다면, 오늘 사마귀가 새로운 보금자리에 안착한 것은 사마귀의 생존 의지에 감동한 한 인간의 자비가 더해졌음이리라.
 
당랑거철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용맹은 멀리하고 경계할 일이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용맹 또한 버려서는 아니 될 일이다. 한낱 미물에게도 배울 것이 있고 감동이 있어 생명을 보전해 주는데, 사력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람이 돕지 않고, 하늘이 돕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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