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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보름달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8.03.29 10:38 수정 2018.03.29 10:38

↑↑ 이 현 학
행복드림공인중개사 대표
ⓒ 성주신문
 
삼십여 년 만에 법당에 앉았다. 어머니의 영가는 사십구재를 끝으로 반야용선을 타고 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으로 떠나셨다. 형제들의 믿음이다. 어머니께서는 극락과 천국을 오가시느라 바쁘실 것 같다. 불심이 깊은 형제들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고, 우리 부부는 하나님 천국에서 영원 안식하기를 기도하기 때문이다.
 
지난 음력 칠월 보름 백중날이었다. 올해 칠순을 맞이한 큰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간밤 꿈속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성주 관운사에서 아버지 재(齋)를 올리고 어머니를 뵈러 갈 것이라고 했다.

그 날 오후 5시경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시간에 맞추어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침상의 어머니는 이제 음식물을 삼킬 힘도 없어 맑은 죽을 주사기에 넣어 입안으로 주입해야만 하는 상태였다. 주사기로 목구멍에 죽을 넣을 때마다 어머니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살아야 하니 먹어야 하고, 먹자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지켜보는 자식도 힘이 드는데 본인이야 얼마나 힘들었을까!
 
거동을 할 수 없어 요양병원에 입원한지 6년이 넘은 세월.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머니의 몸은 거죽만 남고, 치매도 진행되어 자식도 못 알아보시었다. 더욱이 말씀도 하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가 오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보다는 좀 더 깨끗하게 고통 없이 하늘나라로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병실을 나서며 본 어머니의 안색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부부를 바라보는 표정이 온화하고 눈빛이 맑아보였다.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급히 와야겠다고. 간병사가 준 간식을 드시다 기도가 막혀 위독하다는 말씀이었다.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성주로 달려오니 저녁 9시. 이미 어머니는 형님과 여동생의 배웅을 받으며 세상과 이별하신 뒤였다.
 
발인식이 진행되는 중간에 형제를 대표해서 어머니에게 마지막 고별인사를 올렸다.
 
"엄동설한 음력 십일월 보름에 태어난 당신은 삼복더위 음력 칠월 보름에 이승과 이별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께서는 보름달이 무척이나 좋았나 봅니다. 보름에 태어나 보름에 떠나신 당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당신 떠난 휑한 빈자리에 달이 차 보름달이 뜨면 겨우 잊으려 하던 당신 생각이 보름달처럼 넘쳐 차오르겠지요.
 
살아서도 보름달마냥 세상 풍진고초 넉넉히 품으신 당신. 떠나서도 보름달마냥 이 불효자식 가슴에 넉넉한 마음 유산으로 주소서. 사랑합니다. 사랑했습니다. 보름달이 뜨는 한 당신은 제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계실 것입니다. 미수(米壽)에 떠나 신 보름달 같은 내 어머니. 부디 영면하소서!"
 
여름 햇살이 유난히도 따갑게 내리쬐던 날. 어머니의 자그마한 육신은 한줌 재가 되어 안기어 선산 가족묘원에 안장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시면서 흩어져 있던 가족들을 한자리로 불러 모아 주셨다. 새로 조성한 가족묘원에는 조부모님과 부모님께서 나란히 자리 잡으셨다. 세월이 흐르면 형님도 우리부부도 그리고 아들도 어르신들과 한자리에 나란히 함께할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가족묘원을 가꾸는 일이다. 내년 식목이 가능한 날이 오면 나무도 심고, 철따라 피는 꽃들을 심어 사철 푸르고 꽃향기 날리는 정원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한평생 희생과 사랑으로 보름달마냥 환하게 가족을 보듬어 오신 어머니께서 소천하신지 벌써 넉 달이 흘렀다. 삼복염천더위가 눈 내리는 계절로 바뀌고, 겨울이 된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온 누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보름이 되면 보름달을 보면 어머니가 못난 아들 가슴에 한 가득이다. 보름에 태어나 보름에 떠나신 보름달 같은 어머니가 내 갈 길을 늘 환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다.(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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