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산, 수많은 명현거유를 배출한 유림의 본고장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는 곧 타 지역과 차별화 할 수 있는 우리 지역만의 특화된 강점이자 경쟁력으로 육성 발전할 수 있는 근간이 된다. 이에 지역 소재 문화유산에 대한 소개 및 역사적 배경을 보도함으로써 지역민들로 하여금 자긍심 및 애향심을 제고할 수 있도록 선도하고, 아울러 문화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1회 법수사지삼층석탑
▷2회 성주향교 대성전
▶3회 선석사 영산회괘불탱
▷4회 성주향교 대성전
▷5회 명주짜기
▷6회 금봉리석조비로자나불좌상
▷7회 회연서원 및 한강정구신도비
▷8회 심산 김창숙 생가
▷9회 성산동고분군
▷10회 도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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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항면 선석사에 보관돼 있는 보물 제1608호 선석사 영산회괘불탱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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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선석사 영산회괘불탱은 조선시대 숙종28년(1702)에 제작된 괘불탱 1점과 1706년에 제작된 괘불함 1점으로 월항면 인촌리에 위치한 선석사에 보관돼 있다.
2009년 2월 23일 보물 제1608호로 지정된 괘불탱은 가로 464㎝ 세로 675㎝ 크기의 비단에 채색돼 있으며 탁휘, 법해, 설잠, 성징 등 4명의 승려 화가들이 참여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괘불탱화는 석가여래가 영축산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써 중앙에 본존불인 석가여래가 오른손에 연꽃가지를 치켜든 당당한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얼굴은 넓고 각진 사각형에 가까우며 이목구비는 가는 선으로 묘사됐는데 활형의 눈썹과 위로 약간 치켜뜬 눈, 작은 입 등이 특징이다. 목에는 삼도가 가늘게 그려져 있고 귀는 턱 부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신체는 어깨가 넓고 굴곡이 별로 없어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당당한 느낌을 주며, 두 다리를 약간 벌리고 정면을 응시하며 서있는 석가모니의 모습은 영산회 본존으로서의 위엄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오른손은 어깨높이로 올려 연꽃을 잡고 있고 가슴 아래에 위치한 왼손은 엄지와 장지를 맞대고 있다. 옷은 화려한 문양의 붉은 색 대의를 양 어깨에 걸치고 있다.
그림의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본존불보다 한 발자국 앞서 위치하고 있다. 두 보살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에 긴 연꽃가지를 들고 본존처럼 정면을 향해 당당하게 서 있다.
얼굴은 본존과 비슷한 사각형에 가까운 편이지만 턱 부분에 살이 많아 다소 비대해 보인다.
제자들의 가슴과 손등에는 일일이 털을 그려넣어 실존했던 모습을 표현하려 한 듯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그림의 상단에는 석가의 제자인 아난과 가섭 등 4명의 제자가 합장한 모습으로 상반신만 그려져 있어 전체적으로 공간감과 입체감이 잘 드러나 있다.
화기에는 '영산회도(靈山會圖)'란 명칭이 밝혀져 있어 연꽃을 든 석가모니 도상의 성격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다른 영산회도에 비해 구성은 간단하지만 이 도상은 이후 1705년 예천 용문사 영산회괘불탱이 이 그림을 모본으로 해 제작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산회상 괘불도의 초기적 예로써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조선시대 괘불도 연구에 귀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예천 용문사 영산회괘불탱은 보물 제1445호로 지정돼 있다.
선석사 영산회괘불탱은 현재까지 알려진 불화 중에서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대중들에게 꽃을 들어 보이자 오직 가섭만이 그 뜻을 일고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시중'의 미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월항면 인촌리 노인회 관계자는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선석사 영산회괘불탱이 보물로 지정된 것은 태장전 건립 등으로 태실 수호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춘 선석사 위상 및 지역민의 자긍심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취재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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