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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모드(Maudie)처럼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8.05.29 16:49 수정 2018.05.29 04:49

엄 명 자
성주교육지원청 장학사


담장마다 빨간 줄장미가 수줍게 피어나고, 길거리엔 노란 루드베키아가 말갛게 웃고 있다. 화단엔 산딸나무가 눈송이처럼 흰 꽃을 피워 매일 잎사귀 위에 사뿐히 올려놓는다. 보랏빛 꽃과 꿀벌들의 사랑을 수많은 꼬투리로 탄생시킨 박태기나무도 모든 것을 잊고 푸르름만을 향한다.

난 이 계절이 너무 좋다. 눈밭을 뒹구는 삽살개처럼 온 천지를 헤매며 춤이라도 추고 싶다. 신체의 굴곡을 내보이며 거리를 자유롭게 걷고 있던 뉴욕의 여자들처럼 나도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가벼운 몸과 영혼으로 춤을 추고 싶다.
 
이름과 지위, 걸치고 있던 옷과 치장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가끔은 훨훨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것들은 가끔 나의 몸과 영혼에 너무 꽉 끼어 답답했고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언제나 친절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좋은 선생과 엄마로 이웃으로 서 있어야만 했다. 보여 지는 얼굴 뒤에 가려진 진짜 나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추어 사느라 힘이 들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유롭고 가볍게 살 수는 없을까? 영화 '내사랑(원제: Maudie)은 그 해답을 찾게 해주는 영화다. 주인공 모드는 남들에게는 좀 부족해 보이는 여자이다. 깊게 파인 얼굴 주름에 엉클어진 파마머리, 깡마른 외모의 모드는 선천성 장애를 가졌다. 등이 굽고 손과 발은 불편하고 말투는 어눌하다. 장애가 느껴지는 그의 외모는 다른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다. 그러나 내면은 순수하고 아름답고 따스하다. 천진하게 웃고 있는 그의 미소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오빠와 숙모로부터 외면당하고 천덕꾸러기로 살아가던 그녀는 입주가정부로 에버렛의 집에 들어가면서 서서히 존재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바로 그림을 통해서다. 모드는 자신의 '창'으로 보여 지는 대상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려 나간다. 어떤 형식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깊은 내면의 가치로 그림을 그린다. 순수한 영혼이 느껴지는 그녀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된다.
 
붓만 있으면 상관없다고, 원하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하던 그녀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형편없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의 세상에서 성장해 가며 행복을 가꾸어 나간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난 충분히 사랑 받았어요!" 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니체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고유한 자신만의 법칙을 만들고 자신을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삶이 본래 성장하고 존속하고자 하며, 힘을 기르고 강화하려는 본능을 간직한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며 스스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세상에 놓여있는 위치를 살피는 객관의 시각과, 나의 근원이 자리한 곳에 대한 성찰이 놓여있는 주관의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많이 가진 것이 때로는 구속이 될 수도 있고,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때로는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나의 존재를 오롯이 꽃피우기 위해서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모드의 삶을 통해 배우게 된다. 삶 속에서 때때로 버리고 비우고 걷어내면서 무게를 줄이고 물기를 빼고 가볍게 뽀송뽀송한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내 사랑'의 OST 'Dear Daring' 음악이 흐른다. 갓 결혼한 모드가 남편 에버렛이 태워주는 수레를 타고 초원을 가로지르던 장면이 떠오른다. 터질 것 같던 모드의 웃음처럼 나도 소박하고 순수한 얼굴로 내 삶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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