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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 평생을 견뎌온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성주 보통사람의 아주 특별한 삶-4

조진향 기자 입력 2018.06.15 04:45 수정 2019.02.15 04:45

4회 : 최고령 장수 어르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삶은 충분히 귀감이 된다. 이에 본사는 나만의 개성과 활기찬 메시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다양한 이웃 사람들의 삶을 소개함으로써 지역민들에게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희망을 전달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 1회 : 태권도 국가대표 자매
▷ 2회 : 참외명인
▷ 3회 : 최고령 헬스동호인
▶ 4회 : 최고령 장수 어르신
▷ 5회 : 다문화 결혼이주 여성
▷ 6회 : 다둥이 가정
▷ 7회 : 청년농부
▷ 8회 : 5천시간 이상 자원봉사자
▷ 9회 : 3대가 함께 사는 행복한 가족


↑↑ 아들 내외(사진 왼쪽)와 둘째아들의 며느리인 손부며느리(사진 오른쪽)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증손이 다니러 와서 4대가 자리를 함께했다.(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석연 어르신)
ⓒ 성주신문


경산이씨 집성촌인 월항면 안포1리의 이석연 어르신은 올해 96세로 마을 최고령 어르신이며 아들 내외와 손자까지 삼대가 함께 살고 있다.

이석연 어르신은 한개마을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위로 오빠와 언니들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어머니가 남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돌아가셔서 어머니 대신 쌀알을 씹어서 먹여 키웠다.

결혼 전에는 텃밭에 씨를 뿌리고 밭을 매거나 베를 짰다. 어른들은 여자라서 바깥일을 못하게 말렸지만 스스로 일을 찾아서 했다.

그리고 한번 들은 것은 잊지 않을 만큼 총기가 있어 할아버지께서 특히 귀여워하셨는데 사내아이가 아님을 안타까워하셨단다.

그 시절 여자에겐 글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글을 잘 아는 올케로부터 한글을 배워 한글소설을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지금까지 외우고 있다.

한개마을은 성산이씨 집성촌으로 조상대대로 벼슬을 많이 했고 가풍이 엄격해 자라면서 뒷산에 있는 감응사에도 못 가봤단다.

19살에 집안어른들이 정해주는 혼처인 경산이씨 양반가문으로 시집을 오니 남편과는 열네살의 나이차가 나고 전실 자식이 셋 있었다.

시집오던 날 맏아들은 14살, 둘째아들은 9살, 막내딸은 3살로 막내가 색동저고리를 입고 새엄마라 부르며 품에 안기던 기억이 아직도 난단다.

그 후 6남매를 낳아 모두 9남매를 키웠지만 이내 시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시고 남편도 마흔에 자식들을 하나도 출가시키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6.25 때는 뒷산에 굴을 파고 숨어서 난을 피했다. 그렇지만 동네에 쳐들어온 인민군들에게 새끼 밴 암소를 줘서 좀 나았다며 "난리 때는 쌀자루고 재봉틀이고 다 버리고 도망가기 바빠 눈으로 보고도 가져오지도 못했다"고 회상했다.

혼자 힘으로 얼마 안 되는 농사와 베를 짜서 자식들을 키우고 출가시켰다. 자식들 공부를 제대로 못 시킨 것이 마음 아프지만 차이를 두지 않고 키우려고 무척 애썼단다.

"우리 며느리가 일성김씨 가문에서 20살에 시집와서 이날까지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무릎이 아프고 기관지가 안 좋은 거 말고 이렇게 건강한 것은 모두 며느리 덕분"이라며 며느리 김항묵씨가 1991년 경북도지사로부터 효부상을 받은 것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늘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말씀하셔서 다른 사람이 시샘하거나 마음 상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 가르침을 생각하고 많이 삭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말 못하고 살아온 속내가 느껴졌다.

"이긴 사람은 발 뻗고 못자도 진 사람은 발 뻗고 잔다"며 누누이 가르치셨단다. 그 말씀을 아직도 마음에 새기고 사는 이석연 어르신이 건강하게 백수를 누리고 고생한 세월만큼 행복하시길 기원한다.

취재3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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