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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태 영 경희대 명예교수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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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 박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예수라는 한 젊은이가 굴러오는 역사의 바퀴를 단신으로 가로막았다. 그러나 역사의 거대한 바퀴는 그대로 굴러서 이 젊은이를 압살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압살된 그 시체가 그 바퀴에 그대로 붙어 돌아갔는데 그것이 점점 커지고 커져서 마침내 굴러가던 바퀴를 정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반대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역사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의 소식은 우리의 죽음을 초월한 삶을 보여준 것이다.
부활절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을 기억하는 과거적인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내 마음 속에 모셔드림으로써 일어나는 현재적인 부활의 의미가 더 큰 것이다. 현재 내 생활 속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부활'은 예술적 성서라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 줄거리는 이렇다.
재판소의 배심원이 된 네흘류도프 공작은 법정에 선 한 여인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큰 충격을 받는다. 그것은 그녀가 틀림없이 그가 대학생 시설 자기에게 정조를 빼앗기고 그로 인해 임신을 해서 하녀로 일하던 그의 숙모들 집에서 쫓겨나 매춘부로 전락한 캬추샤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억울하게 살인·절도의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서있다. 체면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네흘류도프, 그녀의 타락의 원인이 자기의 무책임한 행동에 있음을 깨닫고 카츄사에 대해 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귀족 사회에 속한 자기 생활 태도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게 된다. 그는 그 순간부터 그때까지 거짓의 가면을 쓰고 살아온 자기의 삶을 청산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까지 계속해 온 불의의 관계를 끊고, 자기 소유를 모두 팔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심지어 약혼녀인 귀족의 딸 미사와도 헤어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의 영혼의 부활이 가능할 수 없었다. 그는 카추샤의 감형 운동에 나섰다. 그녀를 위해 감옥에 드나드는 동안에 도움을 바라는 무고한 죄수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돕는 일에 힘썼다.
그리고 옥중으로 찾아가서 자신의 내력을 밝히고 옛 일을 후회하고 있다고 고백한 다음 마침내 카추샤가 타는 시베리아 행 죄수 호송차를 따라 간다. 그는 진심으로 그와 결혼하려고 하지만, 카추샤는 지나친 참견이라는 듯 단호하게 이것을 거부하고 만다. 카추샤는 자신의 운명보다는 네흘류도프의 양심을 안정시켜 주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단념시키기 위해 일부러 마음에 없는 난폭한 말을 한다. "도대체 당신은 어떤 하나님을 찾아냈단 말입니까? 당신은 나를 미끼로 삼아 자기가 자신을 구원하겠다는 것이군요. 이 세상에서도 나를 장난감으로 삼아 즐기더니, 저 세상에 가서도 나를 미끼로 삼아 구원을 얻어 보겠다는 속셈이군요."
그는 이런 모욕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는 그녀를 따라 나서기로 결심한다. 다행히 그의 끈질긴 수고의 결과로 그녀에게 내렸던 판결이 취소되었다.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그는 그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수용소로 뛰어갔다. 그러나 카추샤는 이미 함께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 시몬손의 청혼을 받아들여 그와 함께 시베리아로 떠나는 길이었다.
네흘류도프가 카추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용서하세요"라고 겨우 들릴까 말까한 음성으로 말했다. 두 사람의 눈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히 계세요"가 아니라 "용서하세요"라고 말했을 때 그 사팔뜨기의 신비한 눈동자와 괴로운듯한 미소를 보면서, 네흘류도프는 그녀가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된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는 네흘류도프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언제까지나 그와 관계를 갖게 되면 자기가 그의 일생을 파멸시키게 될 것이므로 시몬손과 함께 그에게서 떠나 네흘류도프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려 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네흘류도프의 손을 꼭 쥐었다가 재빨리 몸을 돌리고 말았다. 네흘류도프는 홀로 남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와의 관계는 끊어졌지만 그녀로 인해 눈뜨게 된 영혼의 세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영혼의 부활을 위해 성서를 폈다. 이제 앞으로는 진실만 추구하리라고 결심한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아침이 시작된 것이다. 그녀에게 한없이 용서를 바라던 정신으로 영혼의 부활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영혼의 부활을 결단하는 오늘의 부활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