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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덕 희 작가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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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소면을 삶고
나는 상을 차려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살구나무 아래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이 집에 있어 온
오래된 나무 아래서
국수를 다 먹고 내 그릇과 자신의 그릇을
포개 놓은 뒤 당신은
나무의 주름진 팔꿈치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깐일 것이다
잠시 후면, 우리가 이곳에 없는 날이 오리라
열흘 전 내린 삼월의 눈처럼
봄날의 번개처럼
물 위에 이는 꽃과 바람처럼
이곳에 모든 것이 그대로이지만
우리는 부재하리라
그 많은 생 중 하나에서 소면을 좋아하고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던
우리는 여기에 없으리라
···(하략)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문학의숲(2012)
당신이 나인 듯 내가 당신인 듯, 이생이 전생인 듯 전생이 후생인 듯, 굳이 장자의 호접몽 비유를 들지 않아도 저녁의 환한 살구나무 아래가 꿈인 듯 현실인 듯하다. 오래된 살구나무 아래 소박한 소면을 한 그릇씩 비운 부부. 눈을 감고 나무에 기댄 평온한 두 얼굴 위로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분홍 살구꽃. 분홍빛 그늘에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이 겹쳐진다. 두 사람은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농장을 일군다. 그곳에서 반세기 동안 서로의 빈 곳을 채우며 함께한 조화로운 삶은 수많은 이들에게 참으로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잠깐인 이생에서 기력이 다한 100세가 되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조용히 이곳을 떠난 스코트. 인간의 입술은 그가 마지막으로 발음한 단어의 형태를 보존한다는 만젤스땀의 말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스코트 니어링이 마지막으로 발음한 말은 "참 좋다"이었다고 헬렌이 그랬다 한다. 열흘 전 내린 삼월의 눈처럼 우리가 이곳에 없는 날에도 살구나무는 꽃을 피우고 새는 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