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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환 주 전 재경성주중고 동문회장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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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통조경학회(회장 최종희 교수)에서 주관한 조선왕릉 답사 5회차에 다녀왔다(2022.10.1)
이번에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과 서삼릉을 답사하는 것으로 먼저 서오릉(西五陵)으로 향하였다. 이 곳은 한양 서쪽에 5개의 능이 있다 하여 서오릉으로 먼저 조선 19대 숙종과 두번째 왕비인 인현왕후 민씨, 세번째 왕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인 명릉(明陵)을 찾았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릉으로 인원왕후의 능은 숙종의 오른쪽 언덕에 단릉으로 되어있다. 연속극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희빈으로 하여금 왕비에서 폐위 되었다가 다시 복위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인현왕후가 숙종과 나란히 쌍릉으로 모셔져 있어 역사는 정의 편에 서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에는 숙종의 첫번째 왕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 익릉(翼陵)을 찾았다. 인경왕후는 11세에 왕세자빈이 되었다가 숙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 되었으나 천연두에 걸려 2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능으로 외롭게 단릉으로 모셔져 있다.
다음 경릉(敬陵)은 추존된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세조의 맏아들로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20세에 세상을 떠난 의경세자가 그의 둘째 아들 자율산군이 왕(성종)이 된 후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는 성종이 왕위에 오른후 인수대비로 책봉되었다.
경릉은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능으로 당시 세조가 친히 풍수를 보고 결정하셨는데 신하들에게 '밖은 검소하게 하라 그러나 안은 한껏 화려하게 하거라' 하여 다른 능에 비해 봉분이 특히 크게 조성되었다.
다음 홍릉(弘陵)은 조선 21대 영조의 첫번째 왕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이다. 정성왕후는 조선 역대 왕비 중 중전 재임기간이 약 33년으로 가장 길었으나 영조 사이에 자식이 없이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홍릉의 전체적인 배치는 쌍릉 형식이었지만 능의 왼쪽이 비어 있다. 이는 영조가 생전에 정성왕후와 함께 묻히고자 자신의 능 자리를 미리 만들어 비워 두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조의 능이 현 구리시 동구릉의 원릉에 조성되면서 현재도 그 자리는 비어 있다.
다음 창릉(昌陵)은 조선 8대 예종과 두번째 왕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으로 서오릉의 영역 안에 왕릉의 형식으로는 처음 조성된 것이다.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로서 형 의경세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8세에 세자로 책봉되어 19세에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남이의 옥사를 수습하였고 '경국대전'을 완성하였으나 반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창릉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려져 있다.
이곳 서오릉에는 다섯 기의 왕릉 외에도 명종의 원자 순희세자의 순창원, 영조 후궁 영빈 이씨의 수경원, 그리고 숙종 후궁 희빈 장씨의 대빈묘 등 2원 1묘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숙종과 왕비 3분, 희빈 장씨까지 숙종 임금과 관련된 능·묘가 많다.
오후에는 서삼릉(西三陵)으로 향하였다. 이 곳 서삼릉도 서오릉과 마찬가지로 한양 서쪽의 세개의 능이란 뜻으로 먼저 조선 11대 중종의 두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禧陵)을 찾았다. 장경왕후는 1506년(중종1년) 중종의 후궁이 되었다가 1507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1남(인종)1녀(효혜공주)를 낳았으며 1515년(중종10년) 인종을 낳은후 7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희릉은 처음에 헌릉(현 서울 서초구) 서쪽 언덕에 조성되었으나 1537년(중종32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1544년(중종39년)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희릉옆 언덕에 중종의 능이 조성되어 있다가 1562년(명종17년) 중종의 능이 선릉 동쪽(현 서울 강남구)으로 옮겨지자 지금의 희릉만 남게 되었다.
다음 예릉(睿陵)은 조선 25대 철종과 철인 황후 김씨의 능이다. 철종은 정조의 아우 은언군의 손자로(진계대원군의 아들) 강화도 유배지에서 생활하던 중 1849년 헌종이 세상을 떠나자 순원왕후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삼정의 문란으로 농민 봉기가 일어나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민심을 수습하려 하였으나 세도정치로 인해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예릉은 영조대에 편찬한 '국조상례보편'의 예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조선왕릉의 형태이다. 철종은 임금으로 있을 때도 세도정치에 밀려 제대로 왕 노릇도 못한 듯 했는데 능 입구에 배수가 되지 않아 가을철인 데도 잔디가 질퍽한 상태로 있어 안타까웠다.
다음 효릉(孝陵)은 조선 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능이다. 인종은 중종과 장경왕후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생모 장경왕후가 인종을 낳은 지 7일만에 세상을 떠나 문정왕후의 손에서 자랐다. 1520년(중종15년)에 왕세자가 되었고 1544년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효릉은 쌍릉 형식으로 인종의 능에만 병풍석이 있다.
이곳 서삼릉에도 세 기의 왕릉 외에도 인조의 큰 아들인 소현세자의 무덤인 소경원, 장조(사도세자)의 큰 아들인 의소세손의 무덤인 의령원, 정조의 아들인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 등 세 기의 원이 더 있다. 서삼릉에는 이밖에도 대군과 공주, 옹주의 묘와 후궁들의 묘가 48여 기나 있고 왕실의 태실이 54기가 있다.
태실은 원례 각지방의 좋은 터를 골라 조성 했었는데 일제가 관리의 편리 및 조선왕실의 격하를 보이기 위해 서삼릉에 모두 모아 놓았으나 그 과정에서 분실 또는 파손 되어 원형 그대로인 것은 거의 없어 가슴이 아픈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