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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희 국 대구경북서협 사무국장 |
ⓒ 성주신문 |
지옥과도 같은 탄광에서의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삼봉과 덕환은 영달의 당부를 떠올리며 언제나 틈을 노리고 있었다. '반드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초보 광부로서의 생활이 어느덧 3개월을 지나고 있었다. 내일은 음력 8월 15일, 일본에서는 이를 '오봉(お盆)'이라 불렀다. 고향에서의 추석과 비슷한 이 명절은 조상을 기리며 가족과 함께 묘를 방문하고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탄광촌은 들뜬 분위기에 휩싸였다. 일본인 간부들이 고향으로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은 모처럼 쉬며 잔치처럼 음식을 나누었다.
오봉날이 되자, 아침부터 굵은 비가 내렸다. 비와 함께 돼지고기와 명절 음식이 차려지고 술잔이 돌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고향의 부모를 그리워하며 흐느끼기도 했고, 숙소 여기저기서 쓰러져 자기도 했다. 분위기는 점점 느슨해졌다.
저녁 무렵, 삼봉과 덕환은 눈빛을 교환했다. 오늘이야말로 거사를 실행할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장을 넘을 때의 긴박함을 그들만큼 느낄 사람은 없었다. 삼봉이 먼저 담장 위로 올라갔고, 덕환의 손을 잡아 끌어올렸다. 그들은 곧장 빗속으로 뛰쳐나갔다.
산비탈에 걸려 넘어지고 빗물에 미끄러지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보았을 때, 회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폭우로 인해 추격자도, 차량 불빛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본능적으로 도로를 향해 달렸다. 숲 속을 지나고 산길을 내려오니 조금 걷기가 수월해졌지만, 혹시 모를 추격을 대비해 계속 몸을 숨기며 전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친 몸이 한계를 느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날이 밝고 빗줄기가 잦아들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들은 도시의 불빛을 향해 나아갔다. 길을 걷다 보니 작은 농촌 마을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삼봉은 결심한 듯 덕환에게 말했다.
"저기 노인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과수원 울타리 너머로 사과를 따는 노부부가 보였다. 삼봉은 서툰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저희는 여행 중 길을 잃었습니다. 잠시 말씀 좀 여쭤봐도 될까요?" 노부부는 순박한 미소로 그들을 맞아주었다. 삼봉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형을 만나러 왔다고 둘러댔다.
돈도 떨어지고 배가 고프니, 농사일을 도울 테니 식사라도 부탁드린다고 정중히 말했다. 노부부는 딱한 사정을 듣고 흔쾌히 그들을 집으로 들였다. 따뜻한 밥을 먹으며 허기를 달랜 삼봉과 덕환은 팔을 걷어붙이고 사과 수확을 도왔다. 며칠간 함께 지낸 노부부는 두 청년에게 임금을 쥐어주며 말했다.
"여긴 북해도고, 너희가 찾는 가와사키중공업은 오사카에 있다. 열차를 타고 가야 한다."
그렇게 삼봉과 덕환은 도망자 신세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형을 찾을 여정을 떠났다. 낯선 타국에서의 긴 여정은 계속될 것이었다.
<다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