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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人情)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02.07.12 17:22 수정 2002.07.12 17:22

초전중학교장 박화식

'바람 불으소서 비 올 바람 불으소서
가랑비 그치고 굵은 비 들으소서
한길이 바다가 되어 님 못 가게 하소서'

내 어렸을 적, 어쩌다 외할머니께서 오셨다. 요즈음 같으면 찻길 십여 분이면 충분한 길이지만, 몇 번이나 쉬어야 하는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야 했다. 시집살이로 친정 갈 생각일랑 아예 접어야 했던 어머니께서는 그 애틋한 정을 가슴에 묻고 계시다가 밤새워 시집살이 하소연과 모녀의 정을 나누시곤 하시는 걸 옆에서 지켜보았다. 철모르는 나는 외할머니가 사오신 형형색색의 알 굵은 사탕과, 보통 때 잘 먹을 수 없었던 계란찜과 흰쌀 밥, 소고기 국 등 풍성한 상차림만으로도 외할머니가 좋았다. 뿐만 아니었다. 평시 같으면 꾸중을 받을 일도 이때만큼은 너그럽게 웃음으로 묵인하는 일도 즐거웠다.

골목에서 놀다 가면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외할머니가 계신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 마음 든든했다.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고 떼를 쓰면 '오냐, 그러마' 하시고는 어느 날 놀다 돌아오면 가고 안 계시었다. 그때 그 허전함이란! 온 방안이, 집안이, 아니, 어린 마음까지도 텅텅 비어 버려 며칠 동안이나 몸살을 앓았다. 어디 그뿐이랴, 방학을 맞아 놀러온 친척 형제들과 헤어질 때, 잔치하고 난 뒤 며칠 간이나 풍성한 먹거리에 할머니들의 웃음이 사라지고 나면 갑자기 온 세상이 적막해지고 쓸쓸해지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님을 붙잡지 못한 참에 비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매어둔 짐을 보고 안심하는 <가람 이 병기 선생>의 인정은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이다. 그동안 나도 변하고 세상 인심도 변했다. 남의 집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는 일이 드물어졌다. 제삿날에도 일찍 모시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괜히 바쁘게 서두르며 사는 것은(空自忙) 아닐까?
여름 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친척집도 방문케 하고, 손님 초청도 하여 서로 체온을 나누는 그런 따뜻한 사회가 돌아올 수 있도록 마음을 열면 어떨까?

風江一棹 送將歸하니 (님이 가시는 배를 보내고 돌아오니)
夾岸桃花 亂打衣라 (언덕 위에 복사꽃 어지러이 휘날리네)
大醉不知 離別拷러니 (시름을 잊으려고 술에 취해 보았으나)
夕陽西下 轉依依라 (서산에 해 저무니 또 다시 그립구나)

<鄭 鱗 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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