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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주택보급률 통계의 풍요와 체감의 결핍 - 석종출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6.02.24 09:49 수정 2026.02.24 09:49

 

↑↑ 석 종 출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이사
ⓒ 성주신문

 

국가통계포털인 KOSIS의 통계에 의하면 2024년도 기준 주택보급률은 전국평균이 102%이고 수도권이 97.3%이며 그 외 지방이 108.4%이다. 대한민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어섰다.

통계수치만 보면 집이 부족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전세가 부족하고, 매매가격은 상승 압력을 받고 있으며, 청년과 신혼부부는 주거 불안을 호소한다. 숫자와 체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핵심은 통계가 ‘집의 수’를 말할 뿐, ‘사람이 실제로 살 수 있는 집의 수’를 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주택보급률은 ‘주택 수’를 ‘일반가구 수’로 나눈 값이다. 이 산식에는 중대한 함정이 숨어 있다. 오늘날 수도권에서 급증하는 1인 가구, 오피스텔 거주자, 고시원 거주자는 주택 수요임에도 통계의 분모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다가구주택에 여러 가구가 거주해도 통계상 주택은 1채로 계산된다. 즉, 실제 수요는 과소 계상되고, 공급은 과대 평가되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어디에 있는 집인가]’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전국 단위로는 주택이 모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남는 집들은 인구가 감소하는 농촌과 지방 중소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일자리와 교육, 의료, 문화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주택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다. 사람은 ‘[집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직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전국평균이라는 숫자가 수도권의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다.

또 하나의 왜곡은 ‘[누가 그 집을 가지고 있는가]’가 통계에서 사라져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해도 통계상으로는 모두 공급으로 계산된다. 그러나 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고 임대되는 주택은 통계의 전부가 아니다. 다주택 보유가 많을수록 유통되는 주택은 줄어들고, 무주택자의 체감 부족은 심화된다. 주택보급률은 총량을 말하지만, 시장에 나오는 물량은 그렇지 않다.

가격의 문제도 있다. 존재하는 주택과 ‘감당 가능한 주택’은 다르다. 고가 아파트 세 채는 통계상 세 채의 공급이지만, 서민에게는 공급이 아니다. 그래서 전세난과 월세난이 발생한다. 통계는 가격을 고려하지 않지만 현실은 가격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주택의 ‘[질]’ 또한 빠져 있다. 노후화된 단독주택, 사실상 거주가 어려운 빈집, 재개발을 앞둔 노후주택들까지 모두 1채로 계산된다. 그러나 실거주 가능한 주택은 그보다 훨씬 적다. 통계는 물리적 존재를 세지만, 주거 가능성은 세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적 왜곡 속에서 정책 판단이 이뤄진다. “집은 충분하지 않으며 수요는 늘 공급을 초과하고 있고 더욱이 재산증식의 최전선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숫자의 풍요가 정책의 안일함을 낳고, 그 안일함이 시민의 결핍을 만든다.

수도권의 주택 문제는 공급 부족뿐 아니라 지역의 미스매치, 소유의 미스매치, 가격의 미스매치, 품질의 미스매치가 중첩된 결과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통계상 풍요 속에서 체감의 결핍이 발생한다.

따라서 해법 역시 단순한 총량 공급이 아니라, 수도권 내 실수요자가 접근 가능한 주택의 공급 확대, 유통 물량의 증가, 노후주택의 정비, 1인 가구 증가를 반영한 통계와 정책의 정교화에 있다. 무엇보다 전국평균이라는 숫자에 기대어 수도권 현실을 해석하는 관행부터 바뀌어야 한다.

주택보급률 102%는 통계의 진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에서 집을 찾는 시민에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살 수 있는 집이 있는가.”

대한민국의 주택 문제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부족한 것이다. 숫자는 풍요를 말하지만, 현실은 결핍을 말한다. 정책은 이제 통계가 아니라, 체감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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