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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백세각스토리/봉강서원 청마루의 비밀(4)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8.09.11 11:46 수정 2018.09.11 11:46

↑↑ 이 득 균
스토리작가·동화작가
ⓒ 성주신문


(951호에서 이어짐)아! 우리가 입을 다물고 혀를 깨물면서 분루를 삼킨 지 지금 10년이 되었다. 천 년에 한 번 있는 기회를 만나, 만방의 공의가 자재하며 나라를 회복할 가망이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 사람인데 오히려 문을 닫고 앉아서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이에 우리는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통문을 돌려 우러러 알리노니, 이는 진실로 팔역이 똑같은 심정일 것이며 여러 군자들도 또한 마음에 환할 것이다.
 
원컨대 지금부터 군(郡)에서 향(鄕)으로, 향에서 동(洞)으로 각각 독립의 깃발을 세워 우리들의 종노릇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자. 그리고 다시 만국회의에 편지를 보내 우리의 실정과 소원을 알게 하여 공의가 널리 신장되도록 한다면 천만 매우 다행이리라."
 
날이 환해지자, 인근은 공산의 명에 따라 사람들을 다시 사랑에 모았다. 짧지만 강한 격문의 문장에 모두 마음이 흔들리는지, 방안은 숨소리조차 없었다.
 
"성주 장날이 멀지 않으니 빨리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송인집이 조바심을 내며 말했다. 송인집은 성품이 강건하고 재기가 출중하여 일찌감치 소년재사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통고문을 나눠주려면 일일이 필사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인쇄를 하는 방법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송인집의 말에 공산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딴엔 그렇긴 하네만, 어떻게 인쇄를 한다?"
 
인쇄를 하려면 멀리 대구까지 나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본경찰의 눈을 피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사전에 기밀이 새어나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혹 재사(齎舍)의 마루나무로 직접 판을 새겨 사용함은 어떻겠습니까?" 인근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자 공산이 무릎을 쳤다.
 
"옳다! 마침 봉강서당에 소속된 흥효당의 마루나무가 감나무이니 그 일을 하기엔 적당할 듯하다."
 
"그럼 됐습니다. 글은 제가 쓰기로 하고, 나무를 다듬고 글을 새기는 건 송종식(송중립)에게 맡기면 될 듯합니다."
 
송인집이 나서서 그렇게 책임을 분담하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순식간에 인쇄된 통고문 3천매는 송인집과 이수택에게 나누어져 각지에 배포됐다. 이와 함께 제작된 태극기 3천매도 거사일까지 백세각 2층에 몰래 보관됐다. 인쇄에 사용했던 마루나무는 도로 제자리에 뒤집어 넣어 감쪽같이 흔적을 지웠다.
 
공산은 문생과 자질들을 조용히 불러 당부를 잊지 않았다. "오는 장날, 이미 모두에게 만세를 부르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자네들은 각각 집으로 돌아가 여러 방면으로 주선하되, 신중을 더해 기필코 발표하는 공이 있도록 하라. 그러나 무릇 선비는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화순한 얼굴로 공명정대하게 해야 하니, 폭력을 사용하여 희생을 자초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거사일이 가까워지자 백세각은 드나드는 사람으로 분주했다. 월항면 유생 이기정은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읽어 알고 있었는데, 때마침 같은 마을의 이기원과 이전희로부터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실황을 직접 전해 듣고 감격하게 됐다.
 
그러던 중 암암리 거사를 진행하던 송인집의 방문을 받고 그로부터 더욱 상세한 서울의 실황을 듣는 순간, 즉석에서 군내 양반 유생들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개시할 것을 약속했다. 이후 이기정은 동지 이기원과 함께 송회근을 찾아와 공산을 만나게 되었는데, 4월 2일 성주 장날을 기하여 조선독립만세를 같이 고창하기로 결의하고 그 같은 계획을 군내 유력한 유생들에게 통지하여 동의를 얻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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