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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구 민 △대구(생후 1년째 선친의 고향 성주로 이사) △1958년생 △성주초, 성주중, 대건고, 영남대, 서울대 대학원 석·박사, 서울대병원 방사후 과정 △아내와 1남1녀 △한생연 7대 테마과학관 관장/총괄 대표, 21세기생명과학문화재단 이사장, 서울대 동물과학연구소 겸임연구원, 서울대 나이셈 연구위원, 前 한국동물생명과학학회 회장, 前 서울국과인학교(대안학교) 교장, 前 신구대학교 겸임교수, 前 서울대병원 특별연구원,前재경성우회 초대회장 △동물생명과학회 감사패, 서울대총장 감사패, 태국 정부 과학기술부장관 표창창 등 △특허 개인유전자보존kit·노래하는 병아리 부화기, 특허출원 학생용 과학프로젝트 실험실kit 등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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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모교를 찾아 후배들을 위해 다양한 과학체험 활동으로 과학에 대한 즐거움을 선사한 성주초총동창회장 정구민 박사에게 서면 질의를 통해 어린시절의 꿈과 추억, 과학자로 걸어온 길과 후배 사랑에 대해 들어본다.
▣ 성주초총동창회장으로 선출되신 소감은?
어려운 중책을 맡게 돼 부담이 크다. 그렇지만 선임 회장단과 주변인들의 추천과 권유로 총동창회장직을 맡아 임기동안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 후배들에게 과학체험을 진행하셨는데 후배들의 반응과 진행 후의 느낌은?
오래전부터 모교와 성주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이런 기회를 갖고 싶었다. 환갑이 넘어 이제서야 하게 되니 아쉬움이 있지만 앞으로 기회가 되면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고 싶다.
제한된 시간에 다소 어려운 로봇이나 드론의 이론적 배경과 실습을 진행하고, 소음과 광도, 수질과 공기질을 측정하는 실습 그리고 최근 개발된 스마트폰 거치 현미경과 생체스코프를 이용한 곤충과 꽃, 피부와 지문, 조직세포, 의복 등의 미세구조를 관찰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학생들이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서 무사히 잘 마쳤다. 짧은 시간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번 행사는 성주초 문정애 교장과 여러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줘서 좋은 과학행사가 됐다고 생각한다. 함께 성주에 내려온 교육연구원 6명도 열심히 해줘서 감사드린다.
▣ 성주초총동창회 활성화를 위한 계획은?
1907년에 설립된 성주초는 112년 동안 수많은 훌륭한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들이 후배들과 만남의 기회를 넓히도록 하는 게 저의 목표다.
후배들이 훌륭한 선배들과 만남을 통해 꿈을 키우고 일찍 미래를 설계한다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학생들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오면 재경성주향우회, 재경성주초 모임에서 선배들과 만남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아울러 10월 3일 총동창회 체육대회때 재학생들도 참여해 선배들과 만남의 장을 마련해 주고싶다. 선후배가 함께 달리고, 선배로부터 특별강연도 듣도록 할 계획이다. 훌륭한 선배로부터 훌륭한 후배들이 배출되도록 밑거름이 되고 싶다.
▣ 어린시절 꿈은 무엇이며, 초등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추억은?
어린시절 꿈은 아름다운 목장을 경영하는 것으로 푸른 초원에서 말을 달리는 꿈을 갖고 있었다. 아마 병원을 경영하며 농사도 지으신 선친의 영향인 듯하다. 방과 후에는 선친의 농장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농장에는 젖소 7~8마리, 돼지 20여마리, 닭 3~400수, 유산양, 칠면조가 있었고, 사과나무, 배나무, 메론밭, 딸기밭, 배추, 무, 애호박, 들깨, 참깨, 감자, 고구마, 대두, 땅콩, 대파 등을 재배했는데 저의 큰 놀이터이기도 했다.
농장 옆에는 저수지와 하천이 있어 뱀장어, 메기, 붕어 같은 물고기를 잡으면서 물놀이도 하고, 놀다가 배가 고프면 잡은 물고기도 구워먹고, 떨어진 사과와 대파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최정식 선생님의 지도하에 송구부에서 뛰었고, 6학년 때도 농구부 활동을 하면서 성주초팀 대표로 경북체전에 참가했다. 그때 성주초와 중앙초는 선의의 경쟁을 하던 관계였다. 아울러 성적이 떨어지면 단체기합, 개인기합을 받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 과학자로 걸어오신 과정과 현재 운영하는 ㈜한생연, 21세기생명과학문화재단은 어떤 곳인가?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병원에서 시험관아기 특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시험관아기 임신율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석·박사시절 동물의 체외수정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세계 최초로 대동물 In Vitro Cell Block을 타파한 논문을 세계학회에 발표했으며, 동물을 이용한 기초연구를 통해 시험관아기 기초연구에 쉽게 응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때 산부인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시험관아기 기초연구 교육을 진행했으며, 그로 인해 이 분야의 전문 교육연구소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1993년에 '한생연'(한국생명과학연구소 약자)이란 교육연구소를 만들게 됐다.
전문의를 대상으로 기초과학 교육을 진행하면서 어린이들을 위한 과학전문 교육도 함께 시작했는데 뜻밖에 반응이 좋아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의 창업에 도전한 것이 성공의 발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는 서울, 경기, 강원도에 7개의 테마 과학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과학전시와 과학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05년 과학기술부로부터 생명과학문화재단을 허가받고 장학사업과 국제교류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과학자와 사업가로 성공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성격상 모든 일을 즐기면서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왔으므로 특별히 힘들었던 점은 없었다. 연구나 사업이나 모두 초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고, 중간 중간 위기도 찾아 왔지만 위기를 기회로 생각하면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고 본다.
▣ 인생 좌우명은?
한우물을 파는 게 중요하다. 모든 길은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또 다른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면 결코 실패하지 않는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
▣ 과학자가 되고 싶은 후배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는 과학으로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과학 없이는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이 과학자가 되고자 꿈을 꾼다면 여러분은 과학자가 될 것이다. 꿈이 없다면 어렵지 않겠는가? 일찍부터 자신의 꿈을 설계하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미래가 될 것이다.
정리 / 조진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