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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잊힌 낙동강 취수장 건립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2.06.21 09:49 수정 2022.06.21 09:49

↑↑ 석 종 출
펫헤븐AEO 대표
ⓒ 성주신문


'낙동강 칠백 리에 강물을 길러 농사짓는 땅은 서 마지기도 안된다.' 는 말이 있었다. 옛날의 낙동강은 육해(陸海)의 산물(産物)을 교역하는 뱃길은 되었으나 농업용수로 이용되지 못했다. 해마다 홍수를 이기지 못했고 강변에 넓은 들판이 있었지만, 밭작물만 하였지 논농사는 경작이 어려웠다. 오죽했으면 그 지역에서 자란 처녀는 쌀 두말을 못 먹어보고 시집간다는 애처로운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독립된 후 먹고사는 문제가 코앞에 가장 큰 난제였던 시절이 있었다. 6.25전쟁 후 극심한 춘궁기에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한 가난한 농사꾼 민초들이 비일비재했다. 선남면 용신동 출신의 정근후(鄭根厚)라는 분이 그 어려운 시절에도 깨친 바가 있어서 사재를 대어 취로사업으로 굶주림을 벗어나게 하면서 약 5리(2km) 정도의 수로 공사를 완공하고 전기양수기 시설을 갖추게 되었고 이후 농어촌공사의 관리하에 있는 것이 지금의 노석리에 있는 양수장이다.

당시 마을부락의 수백 가구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업용수를 공급받아 쌀농사를 짓게 되었으며 차츰차츰 가난을 면하게 된 계기를 만든 것이 취수장이 만들어진 연유다.

세월이 바뀌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강변에 제방이 축조되고 침수를 연례행사로 겪어오던 토지들은 점점 넓은 옥토로 변해갔다.

농어촌공사 칠곡지사 김시용님에 의하면 예전의 시설은 내용을 알 수가 없고 현재의 취수장은 1996년에 행정관서의 통제 속에 들어오면서 인허가와 준공이 되어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에 만들어진 수로가 이용되고 있으며 1996년도 행정기관의 관리에 들어가면서 보강 보수된 부분이 많다고 한다. 배수로를 통해 참외 하우스의 시설재배에 농업용수를 공급받고 있지만 어렵던 시절에 한 개인의 기부와 예지로 이루어진 시설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농업용수 공급 혜택을 받는 농지의 면적은 약 24ha 정도가 되며 선남면 동부지역의 농업용수 공급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1981년 3월 지역 몽리민 들이 정근후 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비를 세웠다. 위치는 지금 대구 성주간 국도30호선 낙동강 성주대교를 지나 약 500여m 지점 산자락에 있다. 후손 정재혁(60, 내과의사)씨에 의하면 정근후님은 '생전에 국회의원 보좌관과 언론계에서 활동하신 경력을 가진 분으로 기억하며 1967년 3월에 졸하셨다'고 한다. 개인의 큰 공덕이 후세에서 잊히지 않고 그 혜택을 보고 있는 농민들만이라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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