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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인사동 스케치(2)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2.08.23 09:39 수정 2022.08.23 09:39

↑↑ 배 연
화가·수필가
ⓒ 성주신문


광복절이자 말복인 8월 15일 모처럼 인사동을 찾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는 무렵부터 이런저런 핑계가 있었겠지만 인사동에 발길을 끊다시피 한 것이 어림잡아 4년 정도 된 것 같다.

미술협회 회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체의 활동을 접게 되면서 동료 작가들과의 만남도 거의 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인사동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나 자신이 의식적으로 인사동 나들이를 피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동안 인연과 인연 사이에 받은 크고 작은 상처도 나이 들어가면서 오는 회한과 허탈감, 지난 세월의 잘못 살았던 삶의 반성과 후회도 모두 자기 자신이 풀어야 할 숙제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종묘공원 옆에 있는 사무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종로3가 지하철 5번 출구에는 얼마 전 작고한 송해 선생의 동상이 있는데 그분이 생전에 즐겨 다니던 국밥집에 가끔 식사하러 갈 때도 낙원상가 길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인사동을 나는 왜 그렇게도 고집스럽게 외면하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근래 들어 가끔 가까운 지인들과의 식사 모임도 하게 되고 더러 전시장도 들리면서 한동안 격조했던 인사동과의 화해(?)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의 위력은 대단하여서 옛 시절의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던 인사동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빈 가게가 눈에 띄게 많은 것도, 북적이던 거리도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니 30여 년 이곳에서 청춘을 바친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낙원상가에서 '뜨레비앙' 오피스텔의 지인을 만나러 가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동 초등학교 앞 골목을 지나다가 낭패를 보고 말았다.

그전에 막다른 길이어서 되돌아 나온 적이 한두 번 있었는데도 최근 주변에 큰 빌딩들이 들어서서 길을 내었겠거니 지레짐작으로 갔는데 여전히 막다른 골목 그대로였다. 나중에 볼일을 다 보고 종각역으로 가면서도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파고다빌딩을 끼고 돌아가면 피맛골로 연결되는 골목이 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그곳은 재개발 공사로 아예 길을 높게 막아 놓아서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낭만이 넘치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오랫동안 종로를 지키던 역사적인 피맛골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나 보다.

인사동은 뒷골목이 아름답다. 옛날 사대부들이 살던 한옥이 잘 보존이 되어있고 카페와 식당들이 적당히 자리 잡아서 전통과 현대적인 조화가 비교적 잘 어우러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욕심 같아서는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면서 옛 생활상을 보여준다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사랑 문화예술협회 남호 회장과의 약속장소인 바람부는 섬으로 가서 임원들과 함께 이 집 대표메뉴인 대추차를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인사동 사거리에서 가까운 2층 집이다 보니 창밖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서 열심히 손님을 맞는 노점상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 구경거리가 쏠쏠한 편인데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도망간 빚쟁이도 잡는다는 우스개소리를 하면서 한바탕 웃기도 하는 오랜 단골집이다.

시인이면서 화가, 가수로도 활동하는 참으로 다재다능한 남호 회장은 리더쉽 또한 뛰어나서 많은 단체에서 활발하게 타고난 능력을 보여주는 분이다.

이번에 모든 예술 장르를 아우르는 단체를 결성하게 되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는데도 계속 사양을 하다가 결국 함께하기로 하였다.

나로서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단체들을 다 정리한 입장에서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조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미술, 음악, 국악, 문학, 공예, 시 낭송, 심지어 마술까지 다양한 재능을 가진 예술인들이 모여서 함께 내는 목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미팅을 마치고 전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안국역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사거리 왼편 경미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10여 년간 나의 화실로 쓰던 4층은 베이지색 커튼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하노이의 아침인가 하는 베트남 국수 집으로 바뀐 걸로 아는데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가게 밖으로는 여전히 중국 물건이 깔려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전통 표구와 동양화만 판매하던 화랑에는 서양화 쫑쫑이 그림으로 거의 채워져 있다.

한국적인 모습을 기대하고 오는 외국인들에게 지금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오늘의 인사동의 현주소가 어떤지 새로운 정부는 깊이 고민해 보기 바란다.

인사동사거리에서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던 봉원필방은 수도약국 건너편 성지빌딩을 통째로 사서 이전을 하였는데 1층을 전부 필방 겸 매장으로 꾸며서 손님을 맞고 있다.

나와도 각별한 사이인 젊은 사장님은 푸근한 인상과 넉넉한 인심으로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해서 크게 성공을 이루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는 1층에서 5층까지 전시회가 이어지고 지하 3층 극장에는 장소팔 만담가의 아들인 장광팔 만담가가 대를 이어 웃음전도사의 길을 걷고 있는데 얼마 전 8월 8일을 웃음의 날로 정하면서 수운회관에서 큰 행사를 진행할 때 나도 초대받아서 참석했었다.

사거리에는 거의 매일 나와서 기타 치며 노래하던 무명 가수가 보이지 않아서 몹시 아쉬웠는데 거리에서 노래하는 일이 그렇게 만만치가 않은 일이리라.

수입도 예전보다 못하였을 수도 있고 나름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으리라.

인상도 좋고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었던 인사동 명가수님이 더 좋은 장소에서 멋진 공연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일행들과 헤어져서 종각역으로 향하는데 동양 한지가 있던 파고다빌딩은 새 건물을 짓기 위해 준비가 한창이다.

인사동이 점점 변하고 있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가 있다. 얼마 지나고 나면 전혀 이상한 인사동이 우리를 놀라게 할지도 모르겠다.

길 건너 탑골공원에는 노인들이 담장 옆으로 줄줄이 앉아서 장기 두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페친, 소정 가수님이 식사 봉사하는 원각사도 그 옆에 있는데 가수 활동으로 바쁜 가운데에도 남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우리 소정 가수님을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다.

많은 피해를 준 가을 장마전선이 남쪽으로 내려가서 다행히 비가 그친 서울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는데 오랜만에 찾은 인사동을 멀리하고 종각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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