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 종 출 펫헤븐AEO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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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일이 더러는 있다. 방송 타이틀이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가 있을 정도다. 흔하지 않은 일에 대한 사례들이다. 이런 일은 대부분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일이기도 하다.
시골에 거처하는 집은 위채가 있고 문간 사랑채가 있으며 예전에 잠사(누에를 치는 방)할 때 사용했던 아래채가 있다. 한 마지기 정도의 대지에 ㄷ자 모양의 한옥으로 되어있다. 집 둘레의 담은 일부는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것이고 일부는 가시가 겁나게 나 있는 탱자나무로 둘러싸여져 있지만 높이가 높은 편은 아니고 보통 어른의 눈높이를 넘는 정도이다.
시골에는 도둑(절도) 사건은 거의 발생 빈도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시골은 오가는 인적이 드물어서 마을 구성원의 누구에게라도 눈에 띄게 되어 있어서 '도둑'에 대한 경계는 없이 지내는 편이다.
기억으로는 평생에 단 한 번의 도둑 사건이 있다. 아마 육칠 년 전의 일로 기억한다. 이름하여 아가씨절도 사건이다. 도둑 사건을 설명하자면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는 지방도로지만 2차선이고 군도(郡道)라고 해도 번잡하지 않은 전형적인 시골의 한가한 길이다. 마을 어귀에 낯선 차(車)가 서 있으면 동네를 드나드는 주민들이 눈여겨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작은 절도사건이 있고 난 뒤에 알게 되었다. 그날도 하얀색 승용차가 마을 어귀에 있었고 무슨 종교관련 팸플릿을 들고 2인 1조로 동네 이집 저집을 방문하고 있었다. 종교라고 해서 선입견으로 의심함이 없이 대화를 나누다가 초여름 더위 때라 바(bar) 같은 아이스크림을 같이 나눈 기억이 있다.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야 지갑이 털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2인조 여자 절도사건이 이곳저곳에서 발생했다. 경찰서에서는 주의하라는 경고 문자가 오기도 했던 사건이 유일하다.
도둑 사건인지 기억을 기억 못하는 증상의 결과인지 모르지만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초이튿날에 벌어진 일이다. 설날 차례상에 올리고 남은 엽전 모양으로 썰어진 떡국 거리를 물에 불려놓았다. 아내는 소심 따따불의 성격이라 싱크대 위에 놓인 모든 것들의 위치와 상태를 사진을 찍어 놓은 것처럼 기억하는 참 별난 사람이다. 장작을 때어 군불을 지피는 사랑채를 침실로 사용하고 있다. 위채와는 십여 미터나 떨어져 있어서 여간한 작은 소리는 들을 수도 없다. 아침식사를 떡국으로 할 요량으로 본채 부엌에 간 아내는 부엌의 상황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서 사색이 되어 후다닥 뛰어 내려왔다. 밤새 떡국 거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기억에도 한계가 있다. 금세 전의 상황을 또렷하게 되살리는 기억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치매라는 고약한 질환은 우리를 괴롭히는 질병 중의 하나이고 "중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을 만들어낼 만큼 고약한 질환이다. 그것의 초기 증상이라는 것이 옛날의 기억은 잘 되살리는데 방금 전의 상황을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한다고 한다. 무엇이 없어졌다는 사실 보다는 덜컥 엄습해 오는 불안한 마음은 치매라는 것이었다.
부부간의 실랑이는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간밤의 상황을 추리하는데 온갖 상상을 다 동원하는 아내와 "당신의 기억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단정하는 단순함을 강조하는 둘의 긴장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도둑이 훔쳐 갔다면 전날 차례를 모시고 남은 맛있는 많은 음식을 그대로 두고 하필 떡국꺼리만을 가지고 갔겠느냐?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설명과 상황을 되풀이했지만 도통 씨알이 먹혀들지 않았다.
낮에는 별 탈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일은 다음 날 아침에 또 터졌다. 분명하게 부부가 둘이 얼마간의 양을 특수한 무늬가 있는 도자기 형의 밥그릇과 지난밤에 두었다는 그릇에 구분해서 떡국꺼리를 다시 물에 채워두었다. 그런데 두 곳의 떡국이 이튿날 아침 확인 때에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다. 물은 그대로 있고 떡국알 만 없어졌다. 당황한 건 오히려 내 쪽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고양이가 들어왔을 지도 모른다거나 혹시 늙은 쥐가 들어와서 가지고 갔을지 모른다는 등의 내 주장은 완전히 초토화되고 말았다.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가끔 하게 된다. 이럴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가정이 완전히 먹혀들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정초부터 혼란스럽고 심란하기 짝이 없는 일이 내주위에서 벌어졌다. 참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