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하 수 전 全氏 성주군종친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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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은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4국이 다투던 무렵 6가야 중의 하나였던 성산가야의 본거지이다. 성주는 손잡이가 가공된 날카로운 날(刃)이 있는 석기인 자르개 2점 등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수습되는 등 일찍부터 현생 인류가 거주한 땅이다.
또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고인돌(支石墓)이 백천과 이천에 군집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 정치 세력이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세력은 기원 1세기 무렵 작은 나라를 이루었을 것이며, 4세기에는 성산가야를 건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령의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한 6세기를 전후하여 성산가야 역시 신라에 복속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주에 가면, 성산가야 시대인 4세기 무렵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독용산성이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독용산 정상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성 내부에 계곡을 두고 좌우로 쌓은 포곡식 산성(包谷式 山城)인 독용산성은 소백산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에 955m 높이의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험악할 뿐만 아니라 한쪽으로는 강이 흘러 천연의 요새인데다가, 성내에 4개의 연못과 2개의 샘이 있어 물이 풍부하고 활용공간이 넓어 장기 전투에 대비하기 쉽다는 장점 덕분에 축조된 듯이 여겨지는 이 산성은 둘레가 7.7km(높이 2.5m, 폭넓이 1.5m)에 이르러 영남지방에 구축된 산성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임진왜란을 피해 산으로 오르던 백성들이 처음으로 발견한 이 독용산성은 성산가야 멸망 이후 사용되지 않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가 왜란을 계기로 다시 활용되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임진왜란 중 유일하게 전화(戰禍)를 입지 않은 성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
이 성은 조선 숙종 원년(1675년) 순찰사 정중휘가 개축하였는데, 동서남북 7개 포루,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있었으며, 동서 군량고가 있어 성주, 합천, 거창의 군량미도 보관하였다.
군기고(軍器庫)에서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되었지만(일제 때 유물 발굴), 지금은 웅장하였던 성곽 일부와 아취형의 동문만 남아있으며, 시대를 알 수 없는 각종 선정비(善政碑)가 산재하고 있다. 해방 전후에도 비옥한 토질에 감자 묘목 등을 재배하는 40여 호의 집이 있어 사람들이 살았으나 1960년대에 모두 철거됐고, 그 이후로 아무도 살지 않아 계속 빈 성으로 남아 있다.
이제 독용산성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가지게 된 만큼 직접 산성을 올라보아야 마땅하다. 아득한 1500년 전에도 이미 사람이 살았던 산성을 이제 와서 높다고 올라가 보지도 않는다는 것은 당당한 겨레의 후손으로서 개인적 치욕이다. 게다가, 독용산 정상 거의 95% 지점까지 차를 몰고 오르도록 포장 임도까지 개설되어 있으니 무슨 핑계를 달리 댈 수 있으랴.
성주읍을 통과해 왼쪽으로, 혹은 고령읍에서 성주방향으로 계속 차를 몰고 직진하면 한 20분만에 가천에 닿는다.
가천면소재지 내 삼거리에서 성주댐으로 가지말고 우체국이 있는 왼쪽으로 들어가면 불과 1km 가량 지점에 '→독용산성 7.5km, 오왕사 1km'란 안내판이 서있다. 흘낏거리며 오른쪽을 바라봐도 좌우로 산줄기가 펼쳐저 있어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답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금방 오왕사가 좁은 길 오른쪽에 붙어서 나타난다. 오왕사를 지나면서 산비탈을 빙 돌면 도로 '→독용산성 6.2km'라는 등산 안내판이 서있다.
그 아래로는 '입산 통제' 팻말도 보인다. 산불 예방을 위해 11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출입을 통제하며, 군청에 신고 없이 입산하면 산림법 제125조의 규정에 의거 2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설명이다.
꼬불꼬불 위태위태한 임도를 천천히 기다시피 20분 가량 차를 몰아 이윽고 주차장에 닿는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독용산성까지 간다. 주차장에 설치된 안내도를 보면, 산성까지는 별로 멀지도 않고 길도 아주 평탄하여 가벼운 산책을 하는 정도로 보인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산바람에 매료되어 한껏 가벼워진 기분으로 길을 나선다.
금세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독용산성의 멋진 품새가 눈에 들어온다. 산등성이를 타고 이중으로 휘돌아 굽게 축조된 산성의 아름다움이 눈길을 끈다. 멀리 성문(동문루)도 눈길을 잡아당긴다. 오른쪽을 내려다보면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이는 성주댐 의 푸른 물결도 한눈에 들어온다.
'아, 정말 잘 올라왔다'하는 자긍심이 저절로 마음을 휘어잡는다. 여기서 길은 세 갈래로 나뉘어진다. 왼쪽으로 난 산책로를 걸으면 바로 동문루부터 보게 되고, 중간으로 난 길을 선택하게 되면 새로 축조된 독용산성 성곽을 타고 제법 가파르게 올라 곧장 독용산 정상까지 내달릴 수 있다.
잠깐 호흡을 고른 다음 돌아 옛날 성곽을 밟고 오르면 좀 더 먼 거리에서 독용산성과 동문루를 감상할 수 있다. 일단 전경부터 감상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 두고두고 독용산성을 즐겨야 한다. 동문루와 성곽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다. 큰 소나무 한 그루가 마치 등을 대고 여기서 촬영을 하라는 듯이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도 이 소나무 둘레가 경치를 담아내기에 가장 적당한 지점이니, 왼쪽으로는 계곡, 오른쪽으로는 성주댐을 두고 한 그루 소나무가 서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이 일이 결코 우연도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