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 환 주 전 재경성주중고 동문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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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통조경학회(회장 최종희 교수)에서 2023년도 첫 행사로 한국의 명승 답사가 있어 다녀왔다.(2023.4.15 토)
이날 답사에 앞서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3층에서 김학범 교수(전 한국조경학회장)의 경관읽기와 명승의 개념, 역사문화 명승에 관한 이해로 문화와 문명, 한국 명승의 발전과정에 대한 특강이 있었고, 점심 후 서울권역 명승지로 먼저 백사실의 원림유적-백석동천(白石洞天, 명승 제36호)으로 향하였다.
우리 일행은 서울시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상명대 입구·세검정교회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백사실 계곡으로 들어가면서 계곡의 너럭바위 위에 불량 건물로 덮인 안타까운 현실을 접하고 백사실 계곡 연못 터, 주초석만 남은 건물터 등 고정원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주인이 누구였는지조차 알 수 없는 원림유적으로 문화재 지정 명칭으로는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이다. 김학범 교수의 설명으로는 고 노무현대통령이 탄핵정국을 맞았을 때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소일 차 들러 큰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백석동천이 자리하고 있는 이 위치가 백사실 계곡인데 인근 주민들에 의하면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라고 한다. 한편 일정시대 지도에 백석동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계곡의 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에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암각된 글자가 있어 이곳을 백석실이라 부르다가 백사실로 바뀌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신선의 경역을 일컫는 동천은 조선시대 한양 도성 안과 밖의 경승지에까지 명명되었다. 청운동의 도화동천, 가회동의 청린동천, 인왕산자락의 청계동천, 부암동의 백석동천, 성북동의 쌍류동천이다. 그러나 서울의 도시 발전에 따라 도화동천, 청린동천, 청계동천 등은 옛 모습을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쌍류동천은 주위가 모두 주택지로 둘러 싸여 버리긴 했지만 성락원이 보존되면서 성락원 경내에 해당하는 동천 지역만 현재 남아 있고 이곳 백석동천은 청와대 뒤 산인 백악산의 후면에 위치하고 있어 각종 규제를 받아 다행히 자연 상태로 동천의 경역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서울 주산 백악(북악)산으로 (명승 제67호) 향하였다. 백악산은 조선의 수도 한양의 주산이다. 백악은 북한산으로부터 흘러내린 산줄기가 크게 뭉쳐 오른 산으로 한양의 현무에 해당한다. 이 산으로부터 동쪽으로는 낙산줄기가(좌청용) 뻗어 내리고, 서쪽으로는 인왕의 산줄기가(우백호), 또한 맞은 편 남쪽으로는 목멱산(남산)이 한양의 주작으로 안산(案山)을 이루고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이러한 지형을 사신사(四神砂)라고 해서 내사산(內四山)이라 한다. 이 내사산의 산등성이를 따라 성곽을 쌓아 만든 도성이 바로 한양도성(서울성곽)이다. 백악산 지역의 서울성곽에는 4대문중의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과, 4소문중의 북소문인 창의문이 있다.
백악산에서는 한양의 명당수인 청계천이 발원한다. 현재 백악산의 남쪽 기슭에는 청와대가 위치하고 있다. 청와대의 연원은 일정시대 조선 총독의 관저로 정부 수립 후 경무대가 되었다가 오늘날 청와대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볼 때 청와대터는 시작부터가 오늘날의 대통령 관저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곳이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에(윤석열 대통령 취임후) 개방된 청와대 바로 뒷산에서(청와대전망대) 바라본 경복궁과 청와대, 경복궁은 정문인 광화문에서부터 모두 관악산을 향하고 있는 반면 청와대 본관은 남산을 바라보고 있어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구 중앙청), 서울시청, 남산신사와 연결시켰다는 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