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출향인·유튜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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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자연 상태에서는 길이 없는 것이다. 지구위의 모든 생명체들은 저마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사냥이든 채집이든 이동을 해야 했던 것이다. 처음 한사람이 가고, 그 곳을 여러 사람들이 지나다니게 되면 길이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길을 개척하는 사람은 가끔은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이고, 후답자들은 가장 빠른 코스를 위한 노력을 하였을 것이다. 그렇게해서 지금 다니고 있는 수 많은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의 사정이 변하고, 길 또한 세상 물정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자연인이 된듯이 전국의 산을 다니면서 고향 성주의 옛 사연을 공부하다 문득 찾아온 조선십승지에 대한 의문점으로 시작된 고난의 길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나고 있음에 감회가 새롭다. 또 만수동 표지석을 찾으러 간 여정은 한양에서 김서방 찾는 것처럼 막막한 상황이었고, 비는 오고 이곳저곳을 헤메이며 나뭇가지에 긁히고, 비에 젖은 옷과 신발이 참으로 처량했었다. 행운의 여신이 나타난 것일까? 만수동 표지석을 찾던 그 순간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마수리 사셨던 어르신들께서는 다 알고 계셨지만, 산업화로 도시로 삶의 근거지를 옮겨가면서 십승지의 기억도 아련히 사라져가는 것을 되찾은 내용을 '가야산 만수동의 통설과 실증'이란 책에 기록하였다.
선구자의 길은 외로운 것인가? 세상의 인심은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느냐?"라고 비난하는 부류와 대단한 일을 했다 등 다양했다. 고향 발전의 중요한 모티브가 될 듯한데도 너무나도 무관심한 듯하여 십승지 개발의 동력을 부여하기 위해 "천하명당 조선십승지 성주 가야산 만수동" 기념비를 설치하였다. 가야할 길이 너무도 많아 혈혈단신 혼자의 몸으로 진행해 보지만,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 예상하지 않은 비용도 추가해서 겨우 마무리 했다.
당초는 3월 12일에 시도하였으나, 비가 오는 악천후로 연기를 하였고, 4월 16일에는 경사진 산을 오르기에는 기념석이 급히 구한 젊은 친구와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무거워 중도에 포기했다.
4월 마지막 날 마침내 천하명당 조선십승지 기념비를 설치 완료하였다. 그 과정과 비용 등 힘든 점도 많았지만, 최종적으로 완료해서 흐뭇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앞으로도 가야산 만수동의 개발 과정에 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겠지만, 좌고우면 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려 한다. 이제 가야할 길은 창천3거리에 만수동 표지석 모형을 설치함으로써 성주의 랜드마크가 되게 하는 것이다. 만수동 표지석 모형이 가져다 주는 홍보 효과외에도 성주 가천 수륜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부가 혜택도 기대가 되는 프로젝트 인 것이다. 당초 화강암으로 번듯이 했으면 좋겠지만, 우선은 콘크리트로 제작하여 화강암 분위기로 도색하여 최소의 비용으로 진행할 계획을 세워본다.
우리들의 고향 성주가 발전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뚜벅뚜벅 외로운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