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승 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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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는 아직도 내년 총선에 적용될 선거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에 따라 선거구 획정도 미뤄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미 지역에서는 여러 후보자들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고, 출판기념회 같은 행사도 벌어지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뽑힐 국회의원들의 책무는 막중하다. 흔히 지금 대한민국은 복합적인 위기에 빠져 있다고 한다. 경제도 좋지 않고, 남북관계와 동북아정세도 위중하며,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저출산이 상징하는 낮은 행복도와 다수 국민들의 팍팍한 삶은 좋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날로 심각해져 가는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를 낳을 수밖에 없는데, 20% 아래로 떨어진 곡물자급률을 어떻게 올릴 지에 대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고령화된 농촌을 어떻게 살리고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현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산적해 있는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하는 후보자들 중에 이런 과제들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지역의 일꾼'을 자처하는 후보자들은 흔한데, '국가의 일꾼'으로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은 드물다.
이처럼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보이는 '역할의 혼선'이 한국 정치의 큰 문제이다.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국가적 과제들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역 민원을 챙기는 것은 사실 국회의원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해야 할 역할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국회의원의 역할에 대한 혼선이 크다.
그래서 이런 식의 지역구 선거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라는 고민이 들 때가 많다. 더구나 거대정당의 공천을 받으려면, 내부의 공천경쟁이 치열하다. 결국 국가의 정책을 고민하기보다는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지역을 훑는 선택을 하기 쉽다.
그렇게 해서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곧바로 다음 선거를 위해 '지역구 관리'를 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심지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1-2년이 지나면 지역구를 정해서 지역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비례대표로는 2번 출마할 수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불문율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이 있지만, 과연 그중에 국가의 일을 위해 자기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쓰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지 의문인 상황이다.
이것은 국회의원 개인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이고, 선거제도 등 정치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제도의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지만, 그것조차도 국회의원들이 '셀프'로 정하다 보니 번번이 한계에 부딪힌다. 선수들이 자기들에게 적용될 '룰(규칙)'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이런 정당, 이런 후보는 없는지 유심히 살펴보면 좋겠다. 첫째, 지역공약보다 국가적 과제에 대한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얘기하는 후보이다. 지역의 문제와 연계해서 얘기하는 후보라도 좋다. 가령 지역의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얘기하면서 국가적인 대안까지 제시해도 좋은 것이다. 그게 아니라 '우리 지역만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를 하는 후보라면, 내년 총선이 아니라 다음번 지방선거 때 출마하라고 충고를 해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둘째, 정치개혁에 대한 비전과 대안을 얘기하는 후보이다. 어차피 '한 사람의 영웅'이 갑자기 나타나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당들이 비대위나 혁신위를 만들고, 누가 신당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 한국정치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이 해결되기도 어렵다. 국가의 일보다 자신의 재선을 더 신경쓰는 국회의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다. 결국에는 큰 틀의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내년 총선에 나오는 국회의원 후보라면, 지금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정치를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비전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국민들의 참여를 보장할 방안을 제시하는 후보이다. 정치인들만 논의해서 지금 한국사회의 복합위기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주권자인 국민들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는 후보가 있다면, '내가 무엇을 해결하겠다'는 헛공약을 얘기하는 후보보다 더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가 제시한 세 가지도 필자의 견해일 뿐이다. 주권자들이 내년 총선에서 어떤 정당,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활발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곳곳에서 만들어지면 좋겠다. 그것이 구경꾼이 아니라 주권자로 사는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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