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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쌀에 대한 단상(斷想) - 하승수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4.10.22 09:23 수정 2024.10.22 09:23

↑↑ 하 승 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
ⓒ 성주신문

 

어릴 적 쌀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쌀이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보리를 섞어서 보리밥을 먹으라고 했다. 그때는 학교 선생님이 도시락에 보리밥을 싸 왔는지를 확인하느라 '도시락 검사'를 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당시에는 정부가 쌀로는 막걸리도 담궈 먹지 못하게 했다. 그만큼 쌀이 귀했던 것이다.

그 후 어느새 보리밥을 먹어야 한다는 얘기는 사라졌고, 쌀막걸리도 다시 나왔다. 쌀이 풍족해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쌀이 귀했던 그 시절이 가끔 기억난다. 그런 시절이 다시 오지는 않을까?

일본은 요즘 쌀값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50여 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8월 쌀값이 작년 대비 28%가 올랐다고 할 정도이다. 쌀소비가 늘어나고, 재해발생 등으로 쌀이 부족해질 것을 우려한 사람들이 '사재기'를 하는 탓이라고 한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회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1인당 연간 고기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넘어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고기 선호' 사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누구든 밥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밥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은 한국인들의 삶에 뺄 수 없는 것이다.

쌀소비량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2023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4kg으로, 1993년의 110.2kg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하루에 먹는 쌀 소비량이 평균 154.6g으로 밥 반공기에 불과한 정도라고 한다. 그 정도로 쌀 소비가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쌀의 중요성이 감소한 것은 아니다. 쌀을 제외하면 한국인이 먹는 식량 중에서 자급이 가능한 것은 거의 없다.

지금 먹는 육류의 경우에는 대부분 사료를 먹여서 키운 가축으로부터 얻는 것들이다. 그런데 2022년 배합사료 자급률은 20%에 불과한 실정이다. 사료가 없으면 현재의 육류 공급은 유지될 수 없다. 게다가 국내에서 키운 가축만으로 모자라서 수입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육류의 자급률은 63.9%이다. 나머지는 수입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밀, 콩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과일도 수입하는 양이 상당하니, 쌀을 제외하면 식량의 자급기반은 매우 협소해진 상태이다. 그래서 쌀은 개인으로 봐도 여전히 중요한 곡물이지만,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기후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데, 외국으로부터의 곡물수입에 차질이 생기거나 하면, 그야말로 비상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상황이 도래했을 때, 한국인들이 마지막으로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쌀이 너무 천대받고 있다. 특히 정부가 정책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작년 대비 쌀값이 20%나 폭락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방관하고 있다가 늑장 대책만 수립했다. 정부 관료들은 농민들이 벼농사를 포기해서 쌀 생산량이 지금보다 줄어들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같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물가는 모두 올랐는데, 쌀값이 이렇게 폭락하는데도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쌀'은 필요없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렇게 쌀을 천대하지 않아도, 이미 벼농사는 위축되고 있다. 해가 갈수록 논농사를 짓는 면적은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경지면적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논농사를 짓는 면적은 764,000ha였다. 2022년에 비해 1.5%가 줄어들었다. 20년 전인 2004년에는 논 면적이 1,114,950ha였으니, 20년 만에 논 면적은 31.5%나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고령화로 인해 더 이상 논농사조차 짓지 못하게 되는 농민들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 한국처럼 식량자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국가적으로 논을 보전하고 논농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쌀을 천시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태도는 스스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벼농사조차도 무너지면 최종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국민들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정부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국민들이 쌀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농민들이 벼농사를 포기하지 않도록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밥도 챙겨 먹고, 밥을 먹을 때마다 농사의 소중함을 생각하면 좋겠다. 그리고 국민의 먹거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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