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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희 국 금수면 조덕환의 子 대구경북서예협회 사무국장 |
ⓒ 성주신문 |
부산항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배에 오르는 사람들, 손을 흔드는 가족들, 그리고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는 군중들의 모습은 뒤엉켜 있었다. 덕환과 삼봉형은 일행들과 함께 거대한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냄새가 코끝을 스쳤지만, 두 사람의 얼굴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배가 천천히 항구를 떠나기 시작하자, 갑판에 모여 있던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부산항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마음속으로 고향과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고, 그저 말없이 바다를 응시하는 이도 있었다.
"이제 정말로 떠났네."
삼봉형이 중얼거리자, 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물음에 삼봉형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의 바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자, 배 안은 고요해졌다. 선실 바닥에 얇은 이불을 깔고 누운 사람들 대부분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덕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배의 진동과 파도 소리가 그의 귓가를 울렸다.
그는 옆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삼봉형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형, 우리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일까? 정말 좋은 직장이겠지?"
삼봉형은 잠시 생각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군청에서 뽑힌 우리가 괜히 왔겠냐. 걱정하지 말고 지켜보자."
그 말에 덕환은 잠시 안심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새벽이 되어 해가 떠오르자, 많은 이들이 갑판으로 올라갔다. 덕환과 삼봉형도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고국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갈매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한 풍경이 두 사람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낮이 되자 배에서는 도시락이 배급되었다. 일본식 도시락은 익숙지 않은 맛이었고, 많은 이들이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덕환은 삼봉형과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래도 저기 도착하면 좋은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겠지?"
삼봉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도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오후 늦은 시간, 멀리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다!" 누군가 외쳤고, 모두가 일제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배는 점점 항구로 다가갔고, 이윽고 정박했다. 그러나 어느 도시인지 알 길은 없었다. 일본 승무원들은 입을 다물고 있으니 답답함만 커져 갔다.
항구에는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인 듯한 일본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탑승객들을 지역별로 나누더니, 트럭에 오르라고 지시했다. 덕환과 삼봉형은 다른 몇몇 사람들과 함께 트럭에 올랐다.
트럭은 출발한 지 한참이 지나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시를 벗어나더니 차창 밖 풍경은 점차 산길로 변해갔다. 차 안의 분위기는 술렁거렸다.
"왜 시골로 가는 거지? 우리 큰 회사에 취직하는 거 아니었나?"
누군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들 그 말에 동의했지만,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삼봉형은 조용히 말했다.
"군청에서 보낸 건데, 대충 뽑지는 않았을 거야. 좋은 곳일 테니 지켜보자."
그의 말에 모두 잠시 안심했지만, 의구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산속의 건물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트럭은 깊은 산속의 커다란 건물 앞에 멈췄다. 마당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누군가가 연단에 올라섰다. 건장한 일본인 사내였다. 그는 또렷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일본 황제 폐하의 이름 아래 여러분은 일본과 조선의 영광을 위해 일할 중요한 인재들입니다."
옆에 서 있던 한국인 통역이 그의 말을 옮겼다. 모두들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이곳은 그들이 일하게 될 직장이었고, 그들은 일본의 산업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덕환은 삼봉형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시골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거지?"
삼봉형은 눈을 가늘게 뜨며 건물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지. 이제 시작이니까 긴장 늦추지 말자."
그 말에 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산속에서, 낯선 땅에서의 새로운 삶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