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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소설 조덕환의 길 - 제1부 일본에서의 생활 (4) - 일본에서의 첫날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5.03.04 09:22 수정 2025.03.11 09:36

↑↑ 조 희 국 금수면 조덕환의 子 대구경북서예협회 사무국장
ⓒ 성주신문

 

첫날밤은 긴장과 혼란 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배정받은 숙소는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짐을 풀고 회사 관계자들의 주의사항을 들으며 정신없이 정리해야 했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마음속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뒤섞여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이튿날 새벽, 날카로운 나팔 소리가 숙소를 가득 채웠다. 덕환은 비몽사몽간에 눈을 떴다.

"모두 마당으로 집합하라!"

쩌렁쩌렁한 일본어 지시가 이어지며, 일행들은 황급히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서는 간단한 맨손 체조가 시작되었다. 덕환과 삼봉형은 어색하게 몸을 움직이며 주변을 살폈다. 모두들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일본 관리들의 눈초리 때문에 누구도 불평하지 못했다.

체조가 끝나자 식당으로 이동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식판에 담긴 아침 식사는 낯설었다. 밥, 미소된장국, 일본 단무지, 구운 생선이었지만 식판 배식이라는 방식도, 맛도 익숙하지 않았다. 덕환은 잠시 멈칫했지만, 어쩔 수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먹어야 살아남는다."

삼봉형이 작게 중얼거렸다. 덕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억지로 삼켰다.

· 회사 강당에서의 발표
아침 식사가 끝난 후, 일행들은 회사 강당으로 모였다. 넓은 강당의 연단 위로 한 일본인이 올라왔다. 그는 이곳의 사장으로 보였다. 사장은 밝은 미소를 띠며 인사말을 시작했다.

"여러분은 일본 북해도에서 매우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될 것입니다. 이곳은 자연 광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우리 회사는 석탄을 채굴하여 일본 전역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통역을 통해 전달되었고, 뒤이어 또 다른 임원이 회사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던 일행들은 과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연단에 올라오자 더욱 긴장했다. 그는 표정을 굳힌 채 딱딱한 어조로 앞으로 해야 할 일과 규정을 설명했다.

"여러분은 이곳 탄광에서 석탄을 채굴하는 일을 맡게 될 것입니다."

순간, 강당 안이 얼어붙었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이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속았다는 현실
"뭐라고요? 탄광에서 석탄을 캔다고요?"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덕환도 삼봉형도 말을 잃었다. 이곳이 도시의 대기업이라던 기대는 단숨에 무너졌다.

"우리는 군청에서 뽑힌 우수 자원으로, 좋은 직장에 취직하러 왔습니다!"

어느 젊은 남자가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항의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곧 주변의 냉혹한 분위기 속에 묻혀버렸다. 강당 주변으로 건장한 일본 경비대원들이 서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두를 노려보고 있었다.

경비대의 한 명이 차갑게 말했다.

"여러분은 자발적으로 이곳에 온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회사 규칙에 따라야 합니다. 따르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일을 시킬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강당 안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젊은 여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덕환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 반강제적인 계약
강당 안에 놓인 테이블 위로 계약서와 서약서가 하나씩 올라왔다. 일본 관리들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일행들에게 지장을 찍게 했다.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 말은 더 이상의 반항을 허락하지 않았다.

덕환과 삼봉형은 마지못해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덕환은 붉게 물든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형, 우리 정말 괜찮을까?"

삼봉형은 침묵했다. 그의 굳은 얼굴이 모든 답을 대신했다.

· 업무 교육의 시작
계약이 끝나자 곧바로 업무 교육이 시작되었다. 일본 관리들은 작업의 위험성과 규칙을 설명하며 채찍처럼 날카로운 말을 쏟아냈다. 사람들은 지친 몸과 마음으로 설명을 들었지만, 내용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덕환은 조용히 삼봉형에게 말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지."

삼봉형은 깊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지금은 참아야 해. 방법을 찾아보자."

일본 땅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낯설고 가혹한 현실뿐이었다. 그러나 덕환과 삼봉형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겨낼 방법을 찾을 것이라 다짐하며, 깊은 밤의 침묵 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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