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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성 화 △경북 성주군 금수강산면 어은리 출생(71세) △금수초, 중·고졸 검정고시, 한국방송통신대 농학과, 경북과학대 바이오식품학과 △성주농협 및 서부농협 근무(총 24년), 성주관광교육체험연구회 회장, 영남숲아카데미협동조합 대표, 前경북교육농장협의회 부회장 등 △농촌체험학습 활성화 유공 경북도지사 표창, 체험지도사·숲해설가·자연환경해설사·팜파티플래너 자격취득 |
ⓒ 성주신문 |
경북 성주군 금수강산면에서 애지리문화농원을 운영 중인 노성화 대표는 농업과 교육을 접목한 체험프로그램으로 방문객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농경문화 보존에 힘쓰고 있는 노 대표를 만나 농촌교육농장의 역할과 가치, 그리고 그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 애지리문화농원을 조성하게 된 계기는?
20년 넘게 농협에 근무하며 일본과 유럽의 교육농장 사례를 접했는데 교육 및 체험을 통해 농업의 가치를 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다. 퇴직 후 2년간 참외농사를 지으며 실질적인 경험을 쌓고 방송통신대에서 농학을 공부하며 이론을 함께 익혔다. 2010년 경북 성주군 금수강산면 어은리에 애지리문화농원을 열며 완전히 정착했고 이후 2012년 농촌진흥청이 인증한 교육농장에 이름을 올렸다. '애지리'는 땅을 사랑한다는 뜻과 세 딸의 이름 끝 글자를 조합한 것으로 후손들에게 농업과 자연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 금수강산면 어은리에 자리 잡은 이유는?
부모님의 고향이자 익숙한 땅이라 자연스럽게 선택했다. 더구나 남향이라 일조량이 풍부하고 농업과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 농원 내 가장 애정을 쏟은 곳은?
30년 넘게 모은 농경생활물품 등이 자리한 '애지리박물관'이 소중하다. 직접 수집하거나 기증받은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과거 성주댐이 만들어지며 수몰된 지역에서 버려진 항아리나 농기구 같은 생활용품을 접할 수 있다. 워낙 물품이 방대해 현재 재정비 중인데 농경문화의 흔적을 후대에 전하고 옛 농촌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 농촌교육농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방문객이 농업과 먹거리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는 순간이 가장 보람된다. 벼를 타작하고 디딜방아를 찧으며 한 끼 식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 음식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농업의 소중함을 깨닫고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변화하는 과정이기에 더욱 뜻 깊다.
▣ 운영에 있어 힘든 부분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유치원 및 학교 대상의 현장체험학습 프로그램은 지속성이 떨어지고 공공기관의 무료체험과 경쟁해야 하는 점이 어려운 대목이다. 이를 극복하고자 박물관과 같은 차별화된 콘텐츠를 개발하고 농업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체험중심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산물 직거래와 연결해 안정적인 운영기반을 마련코자 한다.
▣ 애지리문화농원이 지역민에게 어떤 공간으로 인식되길 바라는가?
단순한 체험장이 아니라 농촌문화를 몸소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앞서 지역민을 위한 음악회와 팜파티 등을 열어 함께할 기회를 만들었는데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하고 싶다.
▣ 평소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는 편인가?
지역의 문화재와 자연경관을 답사하고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또한, 가야산국립공원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외래식물 제거, 문화재 콘텐츠 발굴 등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파크골프장에서 운동하며 건강을 챙기고 틈틈이 사진촬영도 즐긴다.
▣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건강이 허락된다면 숲과 자연에 대한 교육활동을 계속하고 싶다. 예전에 칠곡군 가산수피아에서 숲 해설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싶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국내 사적지를 모두 탐방하는 것도 목표다.
▣ 가족과 지인 등 주위 고마운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농장을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유물을 기증하고 자재와 장비를 지원해준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애지리문화농원이 존재할 수 있다.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돈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걸어왔고 앞으로도 주변의 도움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