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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실리의 딜레마 - 석종출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5.04.22 09:33 수정 2025.04.22 09:33

↑↑ 석 종 출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이사
ⓒ 성주신문

 

명분은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설명해주며, 조직이나 개인이나 국가의 자존과 정체성을 지키는 기반이 된다. 명분이 없는 실리는 순간의 이익은 줄 수 있어도 지속 가능한 신뢰나 존경을 얻기 어렵다. 반면 실리는 그 명분이 공허한 이상에 그치지 않도록 만드는 동력이다. 아무리 고귀한 명분이라도, 현실적 행동과 결과가 따르지 않으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때로는 행동으로 실현되지 않더라도 명분 자체가 정신적 지표로서 유지되며, 훗날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역사 속에는 이 균형을 놓쳐 실패한 사례가 있다. 조선의 병자호란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라는 명분만을 고집하다 실리를 잃고 백성의 생명과 국토가 위협받은 사례다. 반면, 위기를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고려했던 고종의 아관파천은 일시적이지만 생존을 확보한 사례다.

현대에도 이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국제 사회에서 자주성을 외치는 외교는 명분을, 경제적 협상과 동맹 강화는 실리를 상징한다. 둘 중 하나만 취한다면 불균형이 생기고, 외교적 고립이나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리를 챙기되 명분을 세우고, 명분을 주장하되 실리와 연결시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유교 전통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향교의 사례는 현실의 유효한 교훈을 준다. 향교는 도덕과 예의,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유교의 정신을 계승하는 곳이다. 그러나 일부가 무리가 되어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긴다면, 이는 명분 없는 실리 추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무리 앞에 고립될지언정 맞서고자 하는 이는 유교의 본뜻을 지키는 소수이며, 그 존재 자체가 명분이다. 진정한 유교 정신은 일부의 이익이 아닌 정의와 도의에 있다. 장유서의 이름을 빌려 실리를 취하면서 그 가르침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전통의 배신이자 도덕의 파괴다.

행위는 명분으로 설득하고, 실리로 책임진다. 개인의 삶에서도 명예와 생존, 이상과 현실은 끊임없이 교차한다. 우리는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때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명분과 실리 중 무엇이 옳은가를 따지기보다, 어떻게 둘을 함께 껴안고 균형 있게 실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태도다.

명분 없는 실리는 가벼우며, 실리는 없더라도 명분은 정신과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이 둘의 균형 속에 지속 가능한 선택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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