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달이 떴습니다.
벌레 한 마리 다가가 갉아먹습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집은
벌레 먹은 밤만 먹어요
글쎄 엄마는 벌레 먹은 밤이 더 맛있데요
맛있으니까 벌레가 먼저 먹는다는 거지요
맛있으니까 농부가 먼저 먹습니다
벌레 먹지 않은 맛없는 밤은
장에 내다 팔고요
벌레 먹은 밤은 벌레가 먹듯이 먹습니다
밤나무 가지 새로 초승달이 떠오릅니다
벌레 수천 마리 몰려와 갉아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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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밤꽃이 피는 유월의 밤이 온다. 밤나무 가지 새로 달이 뜨는데 초승달이다. 벌레들이 몰려와 갉아먹은 달일까. 어린 시절 하교 길에 짙은 밤나무 그늘에서 했던 수수께끼놀이는 우리에게 꽤나 촐촐한 재미를 선사해 주었는데,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 "밥 해 주고 밥 못 얻어먹는 것은?", 하고 형들이 물으면 우리는 서로 뺏길세라 "부지깽이!"하고 먼저 고함지르곤 했다.
밥 해 주고 밥 못 얻어먹는 것 - 그게 어디 부지깽이뿐이랴. 남의 땅 부지런히 갈아 평생 딸 아이 쌀 한 말 못 먹여 시집 보냈다던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그렇고, 한 해 담배 농사 몽땅 왜놈들한테 공출 바치고 한 줌 숨겨 '작은집'에서 피우다 걸려 혼쭐나신 할아버지들이 그렇고, 아직도 장터에 나와 앉은 할머니들 앞에 놓인 '상품'들은 시들어 버리기 전에는 입에 대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지혜가 '벌레 먹은 것이 달고 맛 있다'는, 발상의 대전환인데, 시인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벌레 먹지 않은 맛없는 밤은/ 장에 내다 팔고요/ 벌레 먹은 밤은 벌레가 먹듯이 먹습니
다" .......이렇게 하여 예로부터 우리가 벌레와 점점 가까워진 것일까. 맛있는 것 남 안
주고 같이 나누어 먹고 살 만큼이나?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