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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회종합

능지탑의 재복원 문제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4.21 20:37 수정 0000.00.00 00:00

낭산 서쪽 기슭에 있는 능지탑

능지탑의 재복원 문제

낭산 서쪽 기슭에 있는 능지탑, 일명 능시탑, 연화탑이라고도 부른다. 지난 1979년에 복원되었지만 조만간 해체하고 정밀한 학술조사를 거친 뒤 재복원이 시급한 문화재이다. 이 능지탑은 삼국통일을 이루고 문무왕의 시신 화장터로 추정되는 곳이며, 유골은 동해바다 대왕암에 안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왕릉을 뜻하는 ‘능(陵)’이라는 말과 화장한 유해를 모신 부도탑의 의미를 합하여 능지탑이라고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늘 갈 때마다 내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1979년에 너무 시급하게 복원하다보니 원형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또 남아있는 연화무늬가 조각된 석조 부재들을 보아 능지탑은 최소한 3층에서 5층정도의 탑이 아니었던가 싶은데, 2층만 복원하고 그대로 그 귀중한 유물들을 주위에 방치한 모습이 국내외 관광객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필자가 능지탑이 하루빨리 해체되고 다시 재복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면에 새겨진 12지신상 부조들의 크기와 조각기법을 추정하건데 이 12지신상은 최소한 3곳에서 가져온 유물들을 조립한 것이 아닌가 싶다.

능지탑의 1층 탑신부에 있는 12지신상은 12띠중에 9개 띠(쥐,소,토끼,말,양,원숭이,닭,개,돼지)의 부조상이 남아있고, 3개 띠(호랑이, 용, 뱀)의 부조조각상은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현재 복원된 능지탑에 남아있는 9개 지신상 부조조각을 자세히 살펴보면, 3가지 형태의 조각상으로 분류될 수가 있다.

첫째로 가장 많은 수의 타입은 크기가 대략 가로67센티미터 세로 93센티미터의 크기로 돋을새김 부조상이 새겨진 말,양,닭,돼지,토끼 상으로 A 타입이라고 하자.

둘째로 A타입과 돋을새김의 조각기법은 유사하지만 크기가 약간 다른 상이 있는데, 예를들면 원숭이, 개, 소 의 조각상을 보면 부조상의 폭이 70센티미터로 넓거나 혹은 더 좁은 것으로 추정되고 높이는 약 93센티미터로 A타입과는 부조상의 크기가 다른 B타입으로 가정한다.

셋째 C타입이라고 이름붙이고 싶은 북쪽의 가운데 있는 쥐 지신상의 조각기법은 A,B타입처럼 돋을새김이 아니고 부재를 평면으로 갈은 다음에 안쪽으로 깊이 파 들어가 조각한 기법의 향태로 A,B타입의 지신상과는 다른 곳 또는 다른 시기에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A,B타입의 지신상은 무인복장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C타입의 쥐 지신상은 아무리 보아도 문인옷 복장으로 옷의 패션이 확실히 다르다.

이상을 종합할 때, 나처럼 문화재 초보자가 보아도 현재 능지탑의 둘레에 있는 12지신상은 최소한 2곳 내지는 3곳에 있던 12지신상을 모아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점을 던져준다.
 
ⓒ 경주신문사 


문화재는 현장 보존과 원형 복원이 우선이다. 70년대 경주관광산업을 위해 너무나 조속한 시일내에 수많은 문화재가 원형에 대한 정확한 고증없이 복원되어 지금와서 경주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도 한다. 불국사 역 삼거리에 있다 조만간 해체되어 본래의 위치인 남산 염불사지와 이거사지로 옮겨갈 구정동 삼층석탑이 그러하고, 아직도 원형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없어 이 탑이 3층인지 5층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왜 느닷없이 2층으로만 복원되었는지 주위에 방치된 수많은 연화문 조각 부재들을 그대로 두기란 아깝고 또 조각기법과 부재의 크기로 보아 언제 어느 시기에 어디에서 옮겨왔는지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능지탑에서 멀지않은 황복사지 삼층석탑의 동편 밭에 묻혀있는 12지신상의 일부가 능지탑에 옮겨졌다는 상당한 설득력 있는 주장도 있고 하니 황복사지 부근의 밭둑에 묻혀있는 12지신상도 하루빨리 발굴조사되어야만 능지탑 12지신상의 불일치 의문에 대한 상당한 실마리가 제공되지 않을까 싶다.
능지탑! 하루빨리 원형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와 재복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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