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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포커스초대석

"효는 자식이 부모에게 진 빚을 조금씩 갚는 것" / 곽문호씨 부부

임호동 기자 입력 2016.05.03 09:58 수정 2016.05.03 09:58

ⓒ 성주신문
핵가족화가 이뤄지면서 효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요즘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모심으로써 타인의 모범이 된 부부가 있다. 바로 초전면 문덕리의 곽문호씨 부부다. 10년전 초전으로 귀향한 곽씨는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고령의 아버지를 정성껏 모셨으며, 지난달 21일 보화원으로부터 효행상을 수상했다. 그에 앞서 곽씨의 아내인 정대남씨는 2014년 효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에 지난 1일 곽문호씨 내외를 만나 진정한 효의 의미와 효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효행상은 어떤 상이며 수상소감은?
곽문호씨 : 효부·효자·효녀를 알리기 위해 출범한 재단법인 보화원은 매년 효행·열행·선행자 30여명에게 보화상을 수여하고 있다. 보화상은 독행상·효행상·열행상·선행상으로 나눠지는데, 군 주민복지과가 제59회 보화상에 추천함으로써 효행상을 수상하게 됐다.
 
자식된 도리로써 당연한 일을 했는데 이런 큰 상을 받아 민망하고 이런 상을 받을 만큼 효행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누가 알아주길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고생을 많이 한 집사람이 효부상을 받으면서 소문이나 이번 상을 수상한 것 같다. 집사람에게 고맙다.
 
■ 귀촌 전엔 어떤 일을 했고 애로사항은 없었는지?
 
곽문호씨 : 귀촌 전에는 서울에서 건설회사를 다녔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모든 것을 청산하고 낙향했다. 나는 고향이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었다. 집을 가꾸며 부모님을 모시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서울 토박이인 아내는 말은 안했지만 힘들어 했을 것 같다.
 
정대남씨 : 시어머님이 쓰러지시고 귀촌을 결정했을 때 아들이 고3이었다. 그런 아들을 서울에 두고 성주로 오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막상 모든 것을 접고 시부모님을 모시자니 당장의 생계가 또 문제였다. 시어머님을 위해 또 생계를 위해서 요양사자격증을 취득했고, 아직도 요양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서 안하던 일을 하면서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모두 다 좋은 경험이었다.
 
■ 효를 행하면서 느낀 보람이나 애로사항은?
 
곽문호씨 : 후회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다. 아버지는 지난 2013년 어머니는 6개월전 돌아가셨는데 모든 정성을 쏟아 모셨기에 돌아가셨을 때 후회가 남지 않았고 마음이 편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더 풍족하게 모시지 못했다는 것 뿐이다. 그 외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사실을 어머님께 말씀을 못 드렸다는 것이다. 어머님이 아버님을 많이 그리워했으나 어머님의 건강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정대남씨 : 시어머님께서는 뇌경색을 두 번이나 겪었다. 그래도 꾸준한 재활을 통해 언어가 교정되는 것을 보면서 참 뿌듯했다. 돌아가시기 전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때 3년간의 고생을 다 보상받은 듯 했다.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경제적·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그 당시에는 요양지원 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제도를 보면 조금 편하게 시부모님을 모실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진정한 효의 의미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곽문호씨 : 자식된 도리로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람의 기본적인 도리라고 생각한다. 효는 자식이 부모에게 진 빚을 조금씩 갚는 것일 뿐이다.

또한 효는 되물림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께서는 조부모, 증조모까지 모셨었고, 어릴 때 그것을 보고 자랐다. 그렇다보니 부모가 편찮으시면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부모님에 비하면 우리 내외가 행한 것은 그리 큰 효도가 아니다.
 
■ 앞으로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곽문호씨 :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참 신기하게도 갑자기 지인에게서 연락이 와 다시 건설업 일을 시작하게 됐다. 부모님이 도와주시는 것 같다. 새로 주어진 일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또한 고향 집과 아버지 팔순 기념으로 지은 한옥을 잘 관리하고 싶다.
 
정대남씨 : 지금 하고 있는 요양사일을 계속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보람차고 뿌듯하다. 또한 이제는 귀촌을 즐기고 싶다. 취미생활도 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살피고 싶다.
 
■ 인생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곽문호씨 :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훈이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위해주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그 사람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지사지하는 삶을 살기위해 가족 모두 노력하고 있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봄으로써 다툼이 사라지고 화목해 진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고 싶다.

■ 평소 여가생활은 어떻게 보내시며 취미와 특기는?
 
곽문호 : 건설업을 했다보니 조금만 시간이 나도 집을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요새는 서예도 하고 있다. 최근 초전회관이 리모델링하면서 집 지하 공간을 초전서예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예를 배우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을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정대남 : 원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사는 게 바빠 놓고 지냈고 다시 시작하자니 엄두가 안난다. 이제 여유가 생겼으니 여가생활과 취미를 찾아야할 것 같다.

■ 지역민에게 당부하고 싶은말이 있다면?
 
곽문호씨 : 예전의 인정이 넘치던 성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현재 도덕성이 떨어지고 이기심이 높아지면서 자본이 최우선인 삭막한 사회가 됐다. 성주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다른 사람을 위해주고, 인정을 베풀어 다시 양반 성주로 회귀했으면 좋겠다.
 
정대남씨 : 효행이 미담이 되고 이슈가 된다는 것이 안타깝다. 효행은 미담거리가 아닌 당연한 것이다. 이런 당연한 일들이 미담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곽문호씨 △1953년 초전면 문덕리 출생 △건설업 경력(동국재강, 코오롱건설) △효행상 수상 △전대남와 1남1녀 △아내 전대남씨 2014년 효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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