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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의 역사인물 '배설' 그를 재조명하다 5회

임호동 기자 입력 2016.06.08 09:19 수정 2016.06.08 09:19

아직 끝나지 않은 배설의 명예 회복
영화 '명량' 제작진 vs 배씨종친회
명예 회복을 위한 공방 계속돼

게재순서
1회 : 임진왜란과 배설
2회 : 배설과 칠천량 전투
3회 : 배설과 이순신
4회 : 배설의 최후
5회 : 영화 '명량'과 배설

앞에서 살펴본 배설과 각종 매체에서 등장하는 배설은 차이가 있다. 특히 영화 '명량'에서 등장하는 배설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 배설은 적어도 이순신을 암살하거나 거북선을 불태운 배신자도 아니며, 도망치다 부하의 활에 맞아 죽지도 않았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영화 명량으로 인해 한 일가가 고통을 받고 있다. 이번 회에서는 잘못된 고증으로 인해 왜곡된 배설과 실제 배설의 차이를 살펴보고, 성산 배씨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피해 사례와 그 입장을 재조명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 여러번 천거됐음에도 불구하고 벼슬을 하지 않았던 배상룡의 영정(등암영각에 있는 배상룡의 영정)
ⓒ 성주신문
한강 정구·여헌 장현광의 수제자로서 뛰어난 인품과 학식을 갖춰 여러번 천거됐으나 벼슬을 거부한 인재가 있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화왕산성에 참여해 곽재우 장군과 전략을 논의했으며, 이괄의 난에는 격문을, 정묘호란 당시에는 통유문을 지어 국난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등암 배상룡으로 배설의 장남이다. 배상룡은 자신의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참형을 당한 이후 과거에 응하지 않았고, 수차례 천거됐음에도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신을 추천하는 자 없이 죽기를 원했다. 이를 아쉬워한 조정은 1774년(영조 50) 통훈대부 사복시정에 증직해 줬고, 1785년(정조 9년) 유림들이 세운 성주의 도천사에 배향됐다.
 
뛰어난 인재의 아쉬운 죽음이었다. 배상룡이 벼슬을 거부한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인 배설의 죽음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지만 조정이 배설을 버렸기 때문이다. 조정이 뒤늦게 배설을 신원해줬지만, 아버지를 죽인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 성주(성산)배씨종친회 배설 장군 역사 바로세우기 비상대책위원회 모습
ⓒ 성주신문
최근에도 배설의 후손들은 배상룡 선생과 같은 고통을 받고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싸운 배설을 많은 사람들은 비겁자나 이순신을 암살하려고 한 배신자로 기억하고 있다.
 
2014년 여름 우리나라를 강타한 영화가 있다. 바로 '명량'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영화로 다룬 명량의 인기는 엄청났다. 당시 명량은 1천7백만5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해 누적관객 1위를 달성했으며, 아직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런 명량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나라에는 이순신 신드롬이 찾아왔고, 각 군대에는 무료로 상영됐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역사교육 자료로 쓰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었다. 배설의 후손들이었다.
 
영화 속에서 배설은 칠천량전투에서 처음부터 싸울 생각 없이 도망쳐 나온 뒤 이순신의 의견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인물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이순신 암살을 시도하고, 거북선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다 부하 안위의 화살에 맞아 죽는 비겁자로 묘사됐다.
 
성산배씨종친회 배윤호 대변인은 "명량대첩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알고 영화를 봤고, 영화를 본 후 심한 충격에 빠졌다. 배설 장군이 왜놈보다 더한 악인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며 "종친회 회원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충격에 빠졌었고, 어린 자녀들은 학교에서 배설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놀림을 받아야만 했다"고 전했다.
 
결국 참지 못한 배씨종친회는 2014년 9월 15일 김한민 감독과 전철홍 작가, 소설가 김호경씨 등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사자(死者)의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배씨종친회는 금전적인 보상은 일절 원하지 않으며, 제작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배설에 대한 명예를 회복해줄 방법을 찾아 조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배씨종친회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2015년 11월 30일 김한민 감독, 전철홍 작가, 김호경 소설가는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중앙지방검찰청 형사 1부는 '영화 명량은 창작물이며, 허구를 바탕으로 한 만큼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이 결과에 대해 배설의 후손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배씨종친회 관계자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검찰의 자료를 봤을 때 배설은 초반만 등장했고, 그 영향력이 미미해 관객들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며 "이는 말이 안되는 소리다. 영향력이 미비했다면 이번 고소사건이 이슈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사건을 진행한 김경환 변호사는 "배설 장군은 현대 인물이 아닌 400년 전의 공적인물이라는 점, 대중들에게 영화를 개봉하기 이전부터 영화 내용에 허구적 요소가 들어있었다고 충분히 고지한 점 등의 이유 때문에 이와 같은 검찰의 결정을 이끌 수 있었다"고 영화사의 입장을 전했다.
 
배윤호 대변인은 "만약 영화 명량이 허구였다면 영화 초반 장면에 허구적 요소가 가미됐음을 게재했어야 했고, 악역을 할 인물이 배설이 아닌 창작 인물을 배치했어야 했다"며 "몇가지 역사적 자료만 봐도 명백히 들어나는데 역사적 고증을 하지 못한 영화가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영화 관계자들이 무혐의를 받은 뒤에도 배설 후손들은 싸움을 끝내지 않았다. 후손들은 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해놓은 상황이다.
 
창작물에 대한 실존 인물의 명예훼손 논란은 예전부터 많이 있어왔다. 그때 마다 대법원은 결정적·고의적 과실이 없는 한 작가의 상상력·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왔다. 즉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싸움인 것이다.
 
이에 배씨종친회 관계자는 "명예와 자금을 가진 거대한 상대와 법정 공방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상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예정"이라며 "일부 대중들은 우리가 돈을 바라고 이러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영화 제작사 측의 진정한 사과와 우리 조상에 대한 명예회복"이라고 전했다.
 
배설은 임진왜란에서 수많은 공적을 세우고 칠천량에서 12척의 배를 구해내는 등 공적을 인정받았으나, 고증이 되지 않은 일부 매체에서 역사와 달리 늘 비겁자로 평가해 왔다. 이는 그 매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도 마찬가지였다. 배씨종친회는 이것을 멈추고 싶다고 전했다.
 
배설의 후손들은 역사의 왜곡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 고통은 왜곡으로부터 역사가 바로 설 때 끝날 수 있을 것이다.<끝>
 
취재1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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