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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시대착오적인 청와대 국민청원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8.04.12 12:07 수정 2018.04.12 12:07

↑↑ 장 호 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성주신문
 
문재인 정부가 국민과의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도입한 것 중 하나가 '국민청원' 제도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들이 신청한 청원이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청와대가 공식 답변한다는 제도이다. 2017년 8월에 시작해서 올해 2월말까지 12만5천여건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하루 평균 650건에 달한다.
 
국민청원 주제를 보면, 낙태죄 폐지, 암호화폐 규제, 성범죄자 처벌 강화 등 국가적 영향력과 관심이 큰 문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특정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 국회의원 최저임금제 실시, 한국식 나이 폐지, 성추행 연예인 방송출현 금지 등 생뚱맞은 청원도 적지 않았다. 대한민국 청와대가 이런 일로 귀한 시간을 보낸다면 나라 꼴이 어찌될지 걱정이 되는 주제들이다.
 
국민청원권은 헌법 26조에 보장된 기본적 권리이다. 그래서 국회와 행정부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청원제도를 운영해 왔다. 국회청원 절차를 보면, 국민청원서를 국회의원을 경유해 작성하여 국회민원지원센터에 제출할 수 있다고 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신문고를 운영하는데, 민원해소 만이 아니라 국민제안, 정책참여 등도 접수하고 있다.
 
기존의 국민청원 제도와 달리 청와대의 국민청원제도가 새삼 주목을 받는 이유는 '청원' 때문이라기보다는 '청와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국정농단이 가져온 국민적 좌절과 고통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청와대의 힘에 기대고 의지하고픈 국민적 정서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청와대에 집중된 권력의 폐해를 막기 위해 헌법을 고치자는 국민적 여론과는 배치되는 국민적 청와대 사랑 현상인 것이다.
 
사실 청와대에 제기된 국민청원 중 청와대가 해결해 준 문제는 거의 없다. 청원의 대부분이 법과 제도를 고쳐야하는 문제들로, 국회가 나서야 해결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기대감이 높은 이유는 기존의 청원제도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 탓일 것이다.
 
국회 청원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서, 국민들이 독자적인 청원을 할 수 없고, 반드시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일반 국민이 국회를 통해 청원을 하려면 '국회의원의 소개를 얻어' 청원서를 작성하고, 국회의원실을 경유해 청원서를 문서로 제출해야 한다.
 
지방자치가 본격화되면서 주민청원제도에 대한 관심도 높았지만, 어느 한 지역에서도 주민청원제도가 지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주민청원은 커녕 일반 민원조차도 제대로 해결되는 경우가 드문게 현실이다.
 
윗사람의 눈치만 보는 관리들, 규정만 따지는 관리들로 인해 국민의 정당한 민원이 외면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신 언론에 보도되고, 고위층의 주목을 받으면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시민 혁명으로 태동한 문재인 정부이지만, 청원이나 민원의 수준은 조선시대 '신문고'를 연상시키는 봉건적 장치가 오히려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최고 권력자나 그 측근 집단이 해결해줄 수 없다. 최고 권력자에 의해 민원이 해소되는 국가라면 대의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독재국가임을 증명할 뿐이다. 민주국가는 국민들이 스스로 모순과 부조리를 찾아내어 해결하는 제도와 문화를 갖춘 국가이다. 민주국가에서 최고 권력자의 주된 역할은 국민들의 억울한 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들이 쉽게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 민주국가가 되려면 굳이 청와대에 청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모든 국가기관이 국민청원을 받고서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해주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늘 접하는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해서, 지방정부 스스로 지역민의 청원과 민원을 수용하고 해결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이라는 시대착오적 소통수단이 불필요한 성숙한 분권국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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