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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지방선거 유감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8.07.02 10:26 수정 2018.07.02 10:26

↑↑ 장 호 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성주신문
6.13지방선거는 대한민국의 정치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국회의원 재보선과 시도지사, 시군구 단체장과 의원 선거에서 여당 후보들이 압승한 결과이다. 야당을 지휘했던 정당대표들은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고 있다. 지방자치의 주도권이 여당에 넘어가면서, 기존의 지방행정과는 다른 새로운 양상의 자치분권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자치와 분권이라는 원심력보다는 대통령과 여당이라는 구심력이 더 크게 작용한 선거이다. 기존과 다름없이 중앙이 지방을 지휘 통제하는 양상으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여당은 지지도 높은 문재인 대통령을, 야당은 홍준표와 안철수 당대표를 선거운동 전면에 내세웠다. 선거 결과를 두고도 여당은 대통령 덕에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평했고, 야당후보들은 민심을 외면한 무기력한 당대표 덕분에 참패했다고 비난했다.

그 결과 6.13지방선거는 지방도 자치도 실종된 정당 인기투표였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면면이나 공약보다는 당 소속을 기준으로 도장을 찍었다. 그로 인해 권력의 중앙집중 해소라는 지방자치 본연의 의미가 더욱 퇴색되었다. 지방자치 선거마저도 지방사람들을 들러리로 만들고, 중앙사람들이 내 지역의 미래를 좌우하는 소외와 모순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는 각 지역마다 당면한 각기 다른 현안과 문제를 지역사회 내에서 공론화하고 해결방식을 선택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지방선거 때 의제로 채택되지 못하고, 지역 유권자들이 판단을 내려주지 못하면, 해당 지역현안은 해결되기도 어렵고, 해결된다 해도 반발과 부작용으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지역사회 스스로 당면과제에 대한 해답과 대안을 마련하면서 자생력을 키우기보다는, 중앙의 힘과 연고에 의지하는 과거 식민독재 시대의 종속구조가 더욱 굳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지방선거는 서울에 모여있는 정치권력자들이 드물게 지방 나들이를 하는 시기이다. 중앙이 지방에 구애하고 관심을 보이는 시기는 선거운동 기간으로 한정된다.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청와대에서는 지방분권 개헌안을 제시했지만, 어느 정당이나 후보도 주요 선거의제로 삼지 않았다. 경기도지사 후보의 여성문제나 야당의원의 특정 지역 비하발언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지방분권이 지방선거에서도 외면받는 의제인데, 어찌 장차 대한민국이 지방분권 국가로 재탄생할 수 있을까?

지방선거에서 지방과 자치의 실종을 가져오는 또 다른 원인은 언론이다. 신문 방송 포털 모두 전국적인 언론이기에, 각 지역마다 다른 후보자의 면면이나 지역현안에 대한 공약은 다룰 수가 없다. 선거기간 내내 신문과 방송에는 선거보도가 넘쳐났지만 정작 내 지역과 내 후보에 관한 보도를 찾기 힘들었다. (충남도민인 필자가 가장 자주 접한 후보소식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와 경남도지사 후보들에 관한 것이었다). 선거결과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내가 선택한 후보들의 당락 여부는 어느 개표방송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가 없었다. 첨단 디지털 기술로 투개표가 진행되었지만, 유권자들은 여전히 등잔 밑이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다.

이번 6.13선거는 한국 지방정치의 모순을 재확인 해주었다. 정치권력의 힘은 지방에서 비롯되지만 지방의 힘은 여전히 지극히 미미하다. 청와대와 여의도에 막강한 정치권력을 만들어주는 것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지역 유권자들이지만, 그들의 용도는 중앙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만으로 한정된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들이 한결같이 지역 유권자들에게 감사하다는 플랜카드를 내 걸었지만, 정작 그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곳은 중앙에서 선거를 지휘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단골 대선공약으로 등장하던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가 사실상 용도폐기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시군구 기초의회까지도 중앙종속 정당정치의 폐습이 체질화된 것이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유권자조차도 지방자치의 중앙정치 종속을 수용한 탓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지방분권을 거부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국가적 현안, 즉 남북 간의 평화가 지방자치나 분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여당이 지방분권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을 무시하고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음 선거에서 지금의 야당과 같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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