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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함께 읽는 詩 한편 - 막내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9.10.14 17:33 수정 2019.10.14 05:33

↑↑ 박 덕 희
작 가
ⓒ 성주신문


동생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녀가 사는 소읍을 지나치다가 육교 옆 느티나무 밑에서 잠깐 만났다 이제 동생은 앳된 소녀도 막내도 아니었다
밥이나 먹고 가라고
내 팔목 끌어당기는 손은 차갑고 까칠했으며 줄곧 웃는 얼굴은 잔주름과 기미를 다 가리지 못했다
십여 년 차이의 우릴 보며 친구가 저래 좋구나, 지나가는 할머니 말에 아무렇지 않은 척 동생은 또 활짝 웃었다
그간의 사정은 말 안 하고 웃기만 해도 웃음 사이사이 조금씩 내려앉다가 사라지는 그늘,
놓아주지 않을 듯 잡은 동생 손에서 슬며시 내 손을 빼내어 바쁘게 소읍을 떠나왔지만
말할 수 없는 손끝의 감촉과 나무그늘보다 깊어지던 막내의 그림자는 한동안 나를 떠나가지 않았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시인동네(2014)


세월호 5주기 되던 날, 영화 《생일》을 보러 갔다. 자식을 먼저 보낸 엄마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짐작도 하기 무섭고 싫다. 배가 물에 가라앉을 시간에 아들, 수호가 건 전화를 받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 박순남 씨. 죄책감과 분노와 슬픔과 불면과 불안을 안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순남 씨가 수호야, 곧 네 생일인데 난 어떡해야 하니 하는데 입을 막고 눈물만 흘리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순남 씨의 딸, 예솔의 슬픔은 애달팠다. 엄마와 동일시된 예솔이는 바다에 들어가기를 온몸으로 거부했고, 팔이 짧아진 옷을 입고도 오빠(수호) 옷을 사온 엄마에게 투정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소리 내어 울 수도 있었고, 보기 싫은 사람은 보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예솔이는 엄마 사랑에 목이 말라 빼빼마른 어깨로 외로움을 견디고 있었다. 활짝 웃지도 재미나게 신나게 놀지도 못하는 엄마의 그림자 같은 예솔이. 엄마의 슬픔의 그늘에 잠식되어 버린 아이. 예솔이의 슬픔과 외로움이 오래도록 나를 적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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