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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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산에 들에는 초목들이 싹을 내밀기에 바쁘다. 얼마 안 있으면 초록으로, 또 진초록
으로 짙어갈 산천은 이제 막 잠에서 깨나려고 뒤척이는 중이다. 뜨락에 부지런한 산수유가 벌써 노랗게 피어났는데, 진달래는 흙발을 조금씩 꼼지락거리며 일어날 채비를 한다. 봄이 정말 오긴 왔나 보다.
'묻혀 사는' 시인은 봄의 한가운데서, 꽃 지는 아침에 일어나 미닫이를 통해, 스러지는
별과 귓전에 쌓이는 뻐꾸기의 울음에 섞여 은은히 비쳐 나오는 붉은 빛의 미세한 실루엣을 보며 속울음이 터져 나옴을 느낀다. '꽃 지는 아침에 울고 싶어'지는 것이 어찌 시인 뿐이랴만, 이런 날은 꽃잎 지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며 눈이라도 감을 일이다.
( 배창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