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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연 화가·수필가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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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5월 세 번째 주말에 부산을 거쳐 양산을 일박이일로 다녀오게 되었다. 이번에 한국미술협회 양산지부에서 제1회 양산미술대전을 개최하게 되었는데 한국화 (동양화)분야 심사위원으로 위촉받았기 때문이다.
2년 넘게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하여 그동안 여행다운 여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에 오랜만에 바람도 좀 쏘일 겸 느긋하게 하루 전에 출발하기로 하고 일부러 무궁화호 열차표를 예약하였다. 가는 날 날씨는 맑고 햇빛은 따사롭게 비추는 전형적인 초여름의 싱그러움으로 나그네를 반겨주었다.
얼마 전만해도 좌석에 한명만 앉을 수 있었는데 방역지침 완화로 객차 안은 빈 좌석을 찾아볼 수가 없이 여행객으로 가득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녘에는 모내기가 한창이고 산에도 푸르름이 가득한 가운데 제철에 핀 아카시아향이 열차 안으로 스며들어 코끝을 스치는 듯 했다.
지금은 음식물 섭취도 가능하기에 준비해간 토스트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혼자만 하는 여행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완행열차의 느림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작은 간이역에도 정차를 해서 지루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도 여행의 재미이기에 역사 주변에 핀 장미꽃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후3시가 넘어서 부산에 도착하여 1호선 지하철을 타고 동래역에 내리자 산전 서태웅화백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서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양산미술대전 운영위원으로 이번에 심사위원으로 나를 추천한 서화백은 한국 선면회 회원으로 함께 활동하면서 30년 넘게 교류하고 있으며 타고난 친화력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인맥을 가지고 폭넓게 활동하는 것으로 미술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원래 유명한 만화가여서 그런지 그의 작품은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전통 동양화의 기법을 고수하면서도 동물을 의인화해서 보여주는 최근 작품은 세계화로 나아가야하는 우리 미술의 방향과도 일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잠시 쉬었다가 서화백의 안내로 기장군 대변항으로 달려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그것도 3년 만에 개최되는 기장멸치축제 개막식이 막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50년 전 남북대화가 시작되고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던 초기, 사명감으로 불타던 청년시절에 이곳 대변항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미역 건조작업을 하는 어민들 앞에서 승공통일 강연을 했던 추억을 더듬어 보려 했지만 상전벽해로 변한 지금의 항구는 그 옛날 한가하던 어촌의 모습은 눈을 닦고 보아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개막식에는 유명가수들의 노래소리가 울려 퍼지고 쏘아올린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으면서 축제분위기를 더하는 가운데 행사장 주변은 상인들과 관광객들로 가득해 인산인해 그 자체였다. 지금이 제철이라는 멸치회를 맛보기 위해서 인근식당으로 가서 주문을 하고 앉아있는데 갑자기 부산시장이 들어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기념사진도 한 컷 찍었는데 멸치축제 개막식 참석 겸 선거운동을 하러 온 것이리라.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멸치 회는 한마디로 환상적이었다.
오랜만에 입 호강 눈과 귀 호강까지 하고 부산시내로 돌아와서 서면 전철역에서 서화백과 헤어져 혼자 계시는 누님댁으로 가서 일박을 하게 되었다.
나하고는 띠 동갑인 누님은 팔십 중반인데도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반겨주신다.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주셔서 그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할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을 잡고 하실 말씀이 끝이 없다.
몇 년 전 자형을 멀리 보내고 넓은 아파트에 혼자 생활하시는 게 안타깝긴 해도 조카딸이 가까이 있어서 자주 들린다니 다행이지 싶다.
이튿날은 일찌감치 나서서 중간에 서 화백을 다시 만나 양산으로 향하였다.
이틀 연속 기사를 자처하면서 함께한 서화백이 고마울 뿐이다.
양산시청에서 한국화 운영위원인 J 화백을 만나 함께 통도사 쪽으로 달려가서 백토로만 도자기를 제작하는 통도 요를 방문하여 귀한 차 대접을 받고 근처에 있는 전임대통령 사저도 잠깐 들러서 구경을 하였다.
조용하던 시골동네가 시끄러워져서 피곤하다는 주민들의 불만도 들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날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통도사 앞의 보리밥집에서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고 통도사 관광을 하였는데 장경각 팔만도자를 볼 수 있어서 이번에 양산여행 계획을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목판인데 비해 통도사 장경각은 도자기로 제작을 해서 특이할 뿐만 아니라 기둥과 석가래 전체를 옻칠을 해서 보존에 신경을 쓴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 팔만도자경이야말로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문화재로써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질 것으로 짐작된다. 영축산의 영험스런 기운을 받은 천년고찰을 둘러보다가 어제에 이어 이 지역 국회의원을 또 만나서 인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이틀 연속 거물정치인을 만난 것도 이번 여행의 추억거리가 된 것 같다.
서둘러서 양산 미술협회 사무실로 가서 2시부터 본격적으로 심사를 하게 되었는데 1차 심사는 사진으로 하다 보니 조금 빠르게 진행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한국화 출품작 숫자가 턱없이 적어서 씁쓸하고 마음이 아팠다.
출산율 떨어지는 것 못지않게 위기의식을 가져야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화가 사라져 간다는 미술계의 슬픈 현실일 것이다. 대학에 동양화과가 폐강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고 문화센터에도 수강생이 줄고 기존 한국화작가들도 돈이 되는 서양화 재료로 작업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지고 있는 상황이니 한국화의 실종은 이미 끝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K팝이나 영화 등 타 예술 분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K아트가 세계무대에서 빛을 볼 수 있게 하려면 우리 그림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전통회화가 천대받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그런 기대가 요원한 게 아닌 가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사를 마치고 구포역으로 가서 예매한 열차에 피곤한 몸을 실었을 때는 낙동강 너머로 지고 있는 석양이 차창을 붉게 비추고 있었다.
이틀 동안 안내해주고 함께한 산전 화백과 초대해준 양산미협 관계자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나 자신도 옛날 추억을 더듬기도 하고 오랜만에 바닷 내음과 천년고찰에서 우리 정신의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보람 있는 시간이었고 새로운 추억을 만든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