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과 같이 5만명 이하의 소도시일수록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삶과 유대감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이에 본지는, 이웃 동네의 삶과 다양성을 보도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이타적인 의식 개선을 바탕으로 지역발전과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본다.【편집자 주】
▷성주읍 저자골(경산7리)
▷대가면 사도실(칠봉2리)
▷초전면 고산정(고산리)
▶선남면 오도마을(오도리)
▷금수면 오당(광산3리)
▷용암면 두리실(본리2리)
▷벽진면 중리마을(봉학2리)
▷수륜면 양정마을(신정리)
▷월항면 한개마을(대산1리)
▷전주 한옥마을
▷서울시 북촌 한옥마을
▷가천면 활미기·활목(금봉리)
선남 오도리 오도마을은 선남초 동북쪽으로 약 1km 정도의 문화천 동편에 위치해 있으며 앞서 살펴본 대가 사도실 마을과 같이 풍수지리가 두사청에 의해 성주의 5명기(名基)로 지목되면서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예향 성주마을지에 따르면 오도종, 오도지와 같이 오도마을의 한문 표기에서 마을을 뜻하는 宗(종)과 旨(지)가 끝 글자에 붙으면서 현재 이름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마을은 고려말 경남 함양에서 박충좌가 이거해 그 후손이 대대손손 살았다고 전해지며, 조선 성종 때 순천부사를 지낸 성산인 이의용이 이곳에 입향한 후 500년 넘게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현재 마을 성씨로는 성산이씨, 순천박씨, 충주석씨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명당으로 지목된 것처럼 오도마을은 고려말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국가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비옥한 들과 토지가 형성돼있는 고촌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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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순천부사 이의용과 낙안군수를 지낸 아들 이진 학덕을 추모해 1974년 후손들이 지은 재사인 오도재가 마을 동편에 문화유적으로 남아있다.
마을 입향조인 이의용은 학문과 행의가 뛰어나고 순천부사를 역임하는 등 치적이 있어 고을사람들이 송덕비를 세웠으며, 아들인 이진도 넓은 도량과 학덕으로 선정을 베풀어 고을 백성들이 거사비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밖에도 오도마을엔 1560년 후진교육을 위해 세운 공곡서당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그 터를 알 수 없다. 이는 목사 황준량과 권응정, 권응창이 세운 서당이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한강 정구와 사림들이 협력해 다시 중건된 바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건물이 없어졌고, 1933년 고성이씨 집성마을인 대가면 칠봉리 신기마을에 공곡서당으로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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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길지로 알려진 것과 같이 출중한 문무를 지닌 인재 배출과 더불어 효자 박구의 이야기도 전해지며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박구는 고려말 오도마을에 살던 효심 지극한 사람으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난한 집에서 어머니와 살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지자 이웃마을 노인이 잉어의 피를 먹으면 낫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지극정성으로 빈 기도 덕택에 큰 잉어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여의게 되자 산소에 막을 지어 삼년동안 곁을 떠나지 않는 깊은 효를 행했다. 이후 과거에 급제해 예조참의 벼슬을 지냈으며 지극한 효성을 찬양해 효자문이 세워졌다.
이처럼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선조들의 가르침이 남아있는 오도마을(오도리)은 선남면 지역 특성상 대구를 포함해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구미와 김천, 칠곡군 등 주변 도시와의 접근성이 용이해 현재 공공체육시설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2013년 선남 관화리와 오도리 일대가 골프장 개발로 사업대상지에 선정되면서 110만여㎡에 18홀 규모의 선남골프장 건설이 계획됐다.
하지만 북측 사유지 매입에 난항을 겪으면서 성주군은 올해 초부터 사업대상지를 분할해 남측(관화리) 9홀 규모의 골프장을 우선 조성하는 등 단계적 사업추진을 꾀하고 있다.
오도리 마을회관 관계자는 "선남면소재지인 관화리와 경계해있고 대도시와 인접해 주민은 물론 외지인의 접근성도 편리해 다양한 시설이 개발되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지선·김지인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