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필 동 수 필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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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고향은 동의어인지 얼마 전 설을 보내고 나니 새삼 고향 생각이 떠오른다. 물론 지난날만큼은 아닐지라도 설과 고향을 연계하면 그 정감은 오늘이 오히려 화룡점정일 것이다. 물론 산업화사회가 돼가며 편리한 교통통신이 있어 주거 형태나 고향의 의미가 퇴색된 것만큼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현대는 고향의 개념이 고착화된 게 아니라 유동성(流動性)이 강해 그 의미가 지난날 같지 않다는 의미임은 분명하다. 가수 윤수일의 '제2의 고향'이라는 노래도 있으니 말이다.
설의 어원은 옛날 가난하게 살 때 '배고픔의 서러움을 면한다'고 해 부른다는 설(說)이 있고, 제대로 못 먹어서 '섧다'가 '설'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고 알고 있다. 최근에 한 일간지에 설날의 유래는 삼국유사의 '사금갑(射琴匣-가야금을 쏴라)'조에 있다고 해서 책을 뒤졌다. 그 해설을 여기 옮긴다.
『 (···) 왕이 곧 궁중으로 들어가 거문고갑을 쐈다. 그 속에는 내전(內殿)에서 분향수도(焚香修道)를 하던 중이 궁주(宮主)와 은밀하게 간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사형에 처했다. 이로부터 나라의 풍속에 해마다 정월 상해·상자·상오일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고, 감히 움직이지 아니하고 15일을 오기일(烏忌日)이라고 하며 찰밥으로 제사를 지냈으니 지금까지도 이것이 행하여지고 있다.
세속의 말에 이것을 달도라고 하는데, 이는 곧 '슬퍼하고 근심'해서 모든 일을 금하고 꺼린다는 뜻이다. (······)』
또 신라 소지왕 때 사금갑이라는 (삼국유사에 있는) 기사(奇事·간통)와, 연이어 용 말 쥐 까마귀와 두 돼지의 괴변(怪變-까마귀와 쥐의 얘기)을 꺼린다는 의미로 노래를 지었다는데, 그 정월 15일을 오기일(배척하는)이라 하여 여러 일들을 범연(泛然)히 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유래한 가사가 달도가였으며, '달도'는 설을 뜻한다고, 현재의 국어사전에 등재돼 있다.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달도'를 설을 뜻한다는 학자도 미상). 그 연유로 삼국유사에 있는 '색사(色事)'를 배척하고 정결(貞潔)한 삶을 추구하다 보니, 오늘의 설의 시원이 된 게 아닌가 하기에 충분한 자료이다.
다음 떠오르는 기억은 고향에 관한 노래. 고향을 주제로 한 노래가 한둘일까만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 '고향의 봄' 노랫말은 당시 15세 한우현이라는 소년이 잡지 '어린이' 1926년 4월호에 실린 공모 입선작이라고 했다. 그래서 고향의 의미를 더욱 값지게 한다.
노래하면 우리 민족이 가장 친숙한 농요로부터 대중가요, 가곡, 뮤지컬 등 정도만 아는 내게도 좋아하는 가요가 있다. 그 중 순위를 꼽으라면 단연 가곡이며 그나마 부를 수 있는 곡목들을 다 꼽을 수도 없지만 가고파, 비목, 바우고개 등 이 있다. 특히 좋아하는 엘레지는 김성태의 '이별의 노래'가 내게는 압권이다. 꼰대 같은 소리지만 젊은 날 한때 나의 비련을 두고 가슴 저미며 수백 번을 허공을 향해 토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웃지만 그땐 흔하게 누선(淚腺)을 간질였다. 그 곡 지금도 혹시 방송에 나올 때면 꼴같잖게 음울해짐을 속일 수가 없다.
트롯이든 클래식이든 지역과 인종 불문 공연 땐 박수와 환호성을 촉발한다. 그래서 내 박학(薄學)으로도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고 하기도 했다. 특히 원어 가사로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세계의 공통어이고 만고의 고저장단이라는 '음악'이 지역·인종 불문 감성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전문 음악인 말고는 오선지 음계만 보고 음악의 생동감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유명 연주단이 공연 끝났을 땐 앵콜로 답례하고 그도 모자라면 커튼콜을 연발한다. 그게 만국어인 음악의 본령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