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 환 주 전 재경성주중고 동문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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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에 신청한 서울특별시 수안보 연수원 이용 승인이(3.26~28) 되어 연수원 이용중 문경 태극기 마을을 다녀왔다. 이 마을은 문경시 문경읍 지곡리로 지곡 또는 모싯(시)골로 불리는 동네로 주흘산 밑에 형성된 취락이다. 이곳은 1350년경(고려말) 박준봉이란 선비가 마을 어귀에 성황사를 짓고 마을을 개척하였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할아버지가 꿈을 꾸게 되었는데 주흘산에 있던 큰 바위가 마을에 굴러 내려와 말하기를 나를 주춧돌로 삼아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을 모실 성황사를 짓고 주흘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막아 큰 못을 만들어 못 밑의 전답에는 모시를 심고 이를 가꾸어 옷감을 만들면 부자 마을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래서 모싯골, 지곡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이런 전형적인 시골마을이 태극기 마을로 지정되기 까지는 이 마을의 박성율 이장이 추진위원장이 되어 마을 발전을 위한 방안을 연구하던 중 태극기 전문가인 서울시 공무원 출신 송명호 교수를 만나면서부터다. 송교수의 적극적인 지도로 2011년 6월 4일 주민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아 태극기 마을로 지정돼 대형 태극기도 달아 더 높이 휘날리게 했다.
이 마을 길가 주택 벽에는 태극기의 역사적 기록들이 적혀있다.
·등록문화재 제392호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태극기(1950년) - 1950년 9월1일 부산에서 학도병에 지원하는 건국법정대학 학도병들이 통일 다짐을 굳게 맹세하며 서명한 태극기 (독립기념관 소장)
·등록문화재 제390호 유관종 태극기(1950년) - 유관종 소위가 1950년 10월 초 진격 작전 시 사용한 태극기, 바탕에 지명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전투경로 등을 알 수 있음 (독립기념관 소장)
·등록문화재 제458호 진관사 소장 태극기(1919년) - 일장기에 덧칠한 태극기로서 항일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이 1919년 6월~12월 사이에 서울의 진관사에서 숨어 지낼 때 일장기에 덧칠하여 만든 태극기 (진관사 소장)
·등록문화재 제391-2호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태극기(1919년) - 항일운동 선두 태극기 1919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냈던 김붕준의 후손이 소장한 태극기 (개인소장)
·등록문화재 제394호 불원복 태극기(1906년) - 의병대장 태극기 조선말 전라남도 구례 일대에서 활약한 고광순 의병대장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로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불원복(不遠復) 글자가 수 놓아져 있음 (독립기념관 소장)
·등록문화재 제391-1호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1919년) - 항일운동 선두 태극기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 직후 4월10일 개원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1923년 중국 상하이에서 제작하여 게양된 것으로 전해진 태극기 (독립기념관 소장)
·등록문화재 제483호 배설 태극기(1904년) - 영국 언론인 배설 씨가 항일운동 목적으로 1909년 4월 무렵에 설립한 대한매일 신문사의 사장실에 게양한 태극기이다 (동아일보사 박물관 소장)
· 등록문화재 제648호 강릉선교장 소장 태극기(1909년) - 구한말 지방 청소년학교1909년 6월에 강릉지방 청소년 교육에 뜻을 두고 설립한 동진 학교에서 사용했던 태극기 (강릉선교장 소장)
·등록문화재 제388호 김구 서명문 태극기(1941년) - 김구 주석이 중국에서 독립 운동을 할 때 친필로 독립자금 모금을 호소한 내용의 태극기 (독립기념관 소장)
·등록문화재 제393호 이철희 사변 폭발 태극기 (1950년) -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남·북의 진군 경로를 육필로 기록한 태극기. 한국전쟁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임 (독립기념관소장)
·등록문화재 제382호 데니(O.N.Denny 1838~1900) 태극기 - 1890년에 만들어진 태극기로 현존하는 태극기 중에 가장 오래된 태극기이다. 구한말 미국인 외교 고문으로 활약하던 데니 씨가 청나라의 모략으로 조선을 떠나게 되자 고종 임금이 태극기를 하사하였는데 1980년 그 후손이 기증하였다. 가로 262cm, 세로 182cm 바탕에 태극 문양과 4괘를 오려서 재봉틀 박음질한 대형 태극기로 2008년에 등록문화재 제382호로 등록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록문화재 제91호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1950년) - 한국전쟁 당시 경주의 학병 19용사 등이 출정 전에 비장한 각오와 필승을 다짐한 서명 태극기 (독립기념관 소장)
·등록문화재 제384호 동덕여자의숙 태극기(1908년) - 구한말 여학교 태극기 1908년 동덕여자의숙 개교와 함께 교정에 게양하였던 태극기. 4괘의 방향은 독립신문 제호 태극기와 같음 (동덕여자대학교 소장)
·등록문화재 제387호 대한민국만세 태극기(1920년) - 삼각 깃발의 태극기 일제강점기 재미 동포들이 독립 운동을 하면서 사용했던 삼각형 형태의 깃발 (독립기념관 소장)
이 기록들을 보면서 태극기와 함께한 민족의 수난사가 가슴 뜨겁게 밀려옴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반대하는 주민, 예산 문제 등으로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으며 박성율 추진위원장은 2년 전에 작고하였다고 송명호 교수는 증언한다. 자기 동네를 위해서 헌신하는 분과 이런 분에게 용기와 지도를 아끼지 않은 송명호 태극기 전문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또 문경시는 어렵게 만든 태극기 마을을 잘 홍보하여 우리 국민 모두가 한 번씩은 방문하여 애국하는 마음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태극기 마을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