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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단죄는 정치가 아닌 제도적 장치여야 한다 - 윤장열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5.08.26 09:24 수정 2025.08.26 09:24

↑↑ 윤 장 열 언론학자
ⓒ 성주신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사적으로 법인카드를 사용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녀는 이를 두고 정치적 목적의 조사라고 주장한다. 대통령을 꿈꾸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내란 방조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되었다.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이 잇따라 검찰과 경찰의 부름을 받고 있는 요즘, 사회 곳곳의 부정과 부패가 하나둘 폭로되는 듯 보인다. 마치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면서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왜냐하면, 이 같은 장면들이 반드시 건강한 민주주의의 증거인지는 반문해 본다. 그리고 지금의 변화가 법과 제도라는 민주적 장치를 통해 일어난 결과라기보다, 바뀐 권력자의 정치적 의지와 선택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문제는 잘못을 바로잡는 '손'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 손이 작동하는 방식이 제도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는가이다. 바뀐 정권이 정의를 외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부패는 단순히 개별 사건의 처벌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구조적으로 재발을 막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핵심이 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권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공공적 장치들이다. 언론, 시민사회, 행정기관, 감시기구 등이 상호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치적 충돌이나 편의적 단죄를 넘어, 부패를 감시하고 예방하는 지속 가능한 사회 시스템이 기능해야 한다.

해외 사례는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은 2006년부터 정보자유법(Informationsfreiheitsgesetz)을 시행하고 있으며, 시민 누구나 행정기관의 정보를 청구할 수 있다. 비정부기구인 'FragDenStaat(국가에 물어봐)'는 시민들이 직접 정보를 청구하고, 그 결과를 온라인상에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로 이 플랫폼은 수많은 공공기관의 정보 은폐를 법정에서 다퉈 이겨낸 전력이 있다. 공권력의 감시가 권력의 방향이 아니라 제도의 작동을 통해 이뤄지는 구조다.

또한 유럽연합은 '투명성 등록부(Transparency Register)'를 운영하며, 모든 로비 활동을 공개하도록 법제화했다. 어느 단체가 누구를 상대로 어떤 사안을 로비했는지, 예산 출처와 관련 인물까지 모두 시민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투명성은 정권이 교체되어도 일관된 부패 감시가 가능하게 만든다. 시민은 단지 정권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감시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반면 우리는 지금, 제도가 아닌 권력자의 선택에 따라 개혁이 추진되고, 부패가 처벌되며, 조직이 재편되고 있다. 검찰 개혁, 언론 개혁 모두 그 대상은 명확하나, 개혁을 논의하는 주체와 방식이 바뀐 정권의 입맛에 맞춰 흘러간다면, 그 개혁은 다음 권력이 들어섰을 때 되돌려지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도화되지 않은 정의는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부패에 대한 사회적 내성이 낮아지고, 예방 효과가 커지려면 제도, 문화, 시민 의식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공공기관의 투명한 정보 공개, 고위직에 대한 이해충돌 감시, 공익제보자 보호, 독립적 수사 기구의 설치 등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언론 역시 권력에 종속되지 않고, 시민의 눈으로 감시하는 공적 책임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권력이 만들어내는 '심판의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정치적 권력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다. 정의는 권력이 아닌 제도에 의해 구현되어야 한다. 법과 절차, 투명성과 감시의 원칙이 제자리를 잡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부패를 일회성 폭로가 아니라, 재발 불가능한 구조적 문제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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