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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부락을 찾아서-수륜면 신파1리

정미정 기자 입력 2009.10.29 09:16 수정 2009.10.29 09:18

가야산 정기 머금은 진정한 인재의 마을

↑↑ 신파1리 마을
ⓒ 성주신문


■마을 형성을 돌아보다
↑↑ 수확을 앞둔 황금빛 물결이 출렁이는 마을 풍경
ⓒ 성주신문
수륜면 소재지가 바로 ‘신파1리’다.
서쪽으로 솟아 있는 가야산을 배경으로 수확을 앞둔 황금빛 물결이 들판을 노랗게 수놓은 풍요로운 농촌마을로, 영산의 정기를 받아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해 낸 인재의 마을이기도 하다.

면사무소를 비롯한 농협·파출소·우체국·마을금고 등 기관단체가 늘어서 취락이 발달된 면부의 생활중심지로, 자연부락으로 ‘신당 마을’과 ‘천방리’가 있다.
성주군지에서는 ‘신당 마을’에 대해 “연당지(蓮塘池)가 있는 곳이라고 하여 신당(新塘)이라고 칭했다”고 했다.

하지만 마을 원로들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이라는 의미의 ‘연당지’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마을 어디에도 연못은 없단다.

이 마을주민이기도 한 제수천(75) 전 성주문화원장은 “이 마을 노인회관 뒤에는 고인돌로 이룬 분묘 즉 지석묘가 있는데, 이를 볼 때 신석기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여진다”며 “그리고 신당은 전국 대다수의 신당 마을의 유래가 그러하듯 신을 섬기는 마을의 의미로 봄이 더욱 타당하다”고 밝혔다.

제 원장은 “마을 서편의 안쪽으로 예로부터 취락을 이룬 지역을 신당이라 했고, 그 도로변을 만지(蔓旨)라 이른다”며 “만지의 원래 이름은 수륜동 덕촌 마을 동편 구만지(舊蔓旨, 1936년 이전의 면소재지 터)에서 온 것”이라고 전했다.

1936년 병자년 대홍수로 인해 수륜동에 위치했던 면소재지가 침수됨에 따라 소재지와 시장을 이 마을로 이설하며 지명도 따라온 것이란다. 이때 덩굴 ‘만’(蔓) 자와 맛 ‘지’(旨) 자를 합한 만지의 지명 유래는 덕우마 즉 덕위 마을에서 한자의 훈을 빌어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신당 마을은 고려 말의 성주인 이장경의 아들 이백년의 증손 도은 이숭인(1349∼1392)이 세거한 곳인데, 그는 고려 공민왕 때 등과해 뒤에 예문관제학 등의 오랜 관직을 거쳤고 고려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불교풍토에서 성리학을 토착화한 거유였다. 또한 사학을 주도하고 관학을 관장하여 태종의 사부이자 사학의 사표인 길재와 관학의 태두인 변계량이 함께 도은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이 마을은 전주인 이승(1522∼1593)의 출생지인데, 그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 동강 김우옹·한강 정구와 도의로 사귀었다. 몸소 실천한 충효는 고을의 본보기로 삼아 마을에 유허비가 있다. 아들인 심원당 이육 역시 양강의 문인이자 당대의 명유였다.

아울러 조선 의사 이사룡의 7대손 이응갑(1757∼1890)의 덕업을 추모하는 추모재가 있고, 후손 수당 이성기와 추강 이중기의 명망이 높다. 유구한 역사 아래 충효의 자취가 살아 숨쉬는 선비의 고장, 인재의 고장의 명성에 걸맞은 마을이다.

‘천방리’는 면소재지에서 백운동으로 1㎞ 거리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 고려시대부터 명의가 대를 이어 살았는데, 의술이 뛰어나 당나라 의서 천금요방(千金要方)을 인용한 지명이라고 한다.

■주민들에게서 마을을 듣다

가야산 아래 서부지역에 속한 수륜면 신파1리는 참외의 고장 성주에 속하나 동부지역에 비해 일조량이 적은 관계로 참외 농사는 힘들고, 벼농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마을 안에는 관공서가 대거 포진해 있어 생활이 용이하다. 하지만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주민들에게는 불편은 있다. 대다수 농촌마을이 그러하듯이 어르신이 많지만 마을엔 공중목욕탕이 없어 제대로 한 번 실컷 씻으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되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게다가 많은 노인들이 여름철 무더위를 피해 쉴 수 있는 정자 같은 쉼터가 하나도 없어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다.

 
↑↑ 수령 600년을 훌쩍 넘긴 도 보호수
ⓒ 성주신문 
한편 이 마을 주민들이 꼽는 자랑거리는 이숭인 선생이 계실 때 식재한 것으로 보이는 600년을 훌쩍 넘은 은행나무다. 1982년 10월 26일 도 보호수로 지정됐는데, 품격은 도나무이다. 이 나무에 후손을 빌면 아이를 낳게 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신비로운 나무로 주민들의 큰 자랑거리다.


↑↑ 제수천 전 문화원장
ⓒ 성주신문
 
↑↑ 원로 어르신들
ⓒ 성주신문 

※이 마을을 지키고 계신 제수천(75) 전 문화원장과 고영환(76), 박노신(75), 신인태(72), 이영발(72) 어르신께 감사 드리며, 이 밖에도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신 어르신들을 비롯해 마을 이야기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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