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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부락을 찾아서-가천면 창천1리

정미정 기자 입력 2009.10.30 09:24 수정 2009.10.30 09:27

천혜의 환경 아래 조용히 자리잡다

↑↑ 가천면 창천1리 마을
ⓒ 성주신문


■마을 형성을 돌아보다

성주군 서부에는 가천면(伽泉面)이 있다. 남서쪽으로 가야산·독용산과 형제봉이 높이 솟아 있어 산지가 많은 것이 특징으로, 서(西)로 김천시 증산면과 경남 거창군, 남(南)으로 수륜면, 북(北)으로 금수면과 접하고 있다.

가천면 면소재지가 바로 창천리(倉泉里)다. 행정구역상 1·2·3리로 나뉘어져 있으며, 창천1리의 자연부락으로는 ‘천창 마을’과 ‘명덕실 마을’이 있다.

‘천창 마을’은 서부 성주군 중심지의 소도시로, 교통·산업의 요충적 위치에 있다.
가야산(1,430m)과 형제봉(兄第峰 1,022m) 에서 내린 산릉과 계곡이 대가천에 유입되는 평야지에 터 잡아 산수와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지세가 대가천에서 가장 좋은 명지로 알려져 왔다.

천창 마을은 원래 천평(泉坪)이라 불렸다. 맑은 샘과 기름진 들판이 있어, 샘 천(泉) 자와 평평할 평(坪) 자 더한 천평 마을이라고 한 것.

이 곳은 18세기 초반에 천창(泉倉)으로 이름이 바뀌게 됐다. 1715년(숙종 41년) 성주목사 윤헌주(尹憲注)가 양곡창고를 지어 천야창(泉野倉)이라 하고, 이에 마을 지명도 천평에서 ‘천창’으로 바뀐 것이다.

 
↑↑ 마을회관
ⓒ 성주신문 
지금의 마을 이름은 일제에 의해 다시 바뀐 것이다. 천창이라는 음이 일본어인 센소(戰爭)와 음이 같다고 하여 창천으로 부르게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역사는 깊으나 이 마을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성주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는 1936년 병자년 대홍수의 피해를 이 곳 역시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이전에는 마을은 있었지만 주민은 그리 많지 않았고, 재난 이후 터를 닦아 인근 지역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이주해오며 지금의 마을이 이뤄졌다고 한다.
창천 마을에서 남쪽 1㎞ 거리에 동향해 산언덕에 들어앉아 대가천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이 바로 ‘명덕실’이다.

↑↑ 농한기라지만 가을걷이 등으로 쉼터는 조용하다.
ⓒ 성주신문
창천과는 달리 정확한 유래가 전해 내려오지는 않지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동리 앞산이 벌 같고, 뒷산이 벌집 같아서 마치 벌이 벌집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비유해 만들어 졌다는 것. 즉 재래종 벌통의 이름인 명덕을 따서 마을의 이름이 됐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설은 서경(書經)에서 유래됐다는 것. 서경에 이르기를 ‘黍稷非馨 明德惟馨’(서직비형 명덕유형) 즉 ‘제물(祭物)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요, 밝은 덕이 오직 향기로운 것’이라고 했다. 이 마을 주민들이 덕행을 중요시했기에, 이를 비유한 명덕실로 마을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워낙에 오랜 세월이 지났기에 지금은 무엇이 맞는 지 알 수 없다.

■주민들에게서 마을을 듣다

창천1리에는 10월 22일 현재 125세대, 280명(남 137명, 여 143명)이 생활하고 있다.
참외의 고장에 속하기에 주작목은 참외다. 주민의 대다수가 노인이고, 이 중 태반이 홀로 사는 노인이란다.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는 오래고, 제일 젊은 연령층이 50대인데 그나마도 몇 안 되는 고령화 마을이다.

소재지 마을이지만 마을 안은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 사이에 옛날식의 한옥집이 많이 남아 있다. 이 곳 주민들이 물을 물처럼 쓴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2005년 가천상수도가 준공되며 급수가 시작됐지만 아직 상수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집도 있단다.

가천정수장에 따르면 창천1리의 상수도 보급률은 80% 정도다. 마을에 상수도관이 매설됐지만 각 가정에 이를 연결하려면 일정 비용의 자부담이 소요되는데, 이를 부담하기가 벅찬 가정에서는 아직도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다.

노부부 혹은 홀로 사는 노인이 많아 평균 70∼100만원하는 시설비를 부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주민의 20%는 아직도 물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평생을 아무 욕심 없이 살아왔고, 농사로 자식들 키우느라 청춘이 흘러갔지만 자식 자랑에는 피곤도 없다. 이제 자식들은 대도시로 훌쩍 떠나 보내고 홀로 고향을 지키며, 굵은 땀방울은 멈추지 않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롭지만은 못한 것이 바로 농촌의 현실이다. 일상에 바쁘더라도 고향 마을과 부모님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 김형렬(74) 노인회장
ⓒ 성주신문
 
↑↑ 문양준(73) 전 노인회장
ⓒ 성주신문 
※김형렬(74) 노인회장, 문양준(73) 전 노인회장을 위시한 원로 어르신과 주민 여러분 그리고 강영석 가천면장과 백대흠 주민생활지원담당 등 마을 취재에 협조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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