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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이용소 유운길씨 - "무료로 이발해드립니다"

이성훈 기자 입력 2010.02.17 10:31 수정 2010.02.17 10:42

이왕 마음먹고 시작한 봉사활동, 내 몸과 내 손이 허락하는 날까지

ⓒ 성주신문

벽에는 한 청년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과 빛 바랜 표창장, 액자들이 순서 없이 걸려 있고, 낡은 라디오에서는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노년의 남자가 능수능란한 가위질로 그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어르신을 멀끔한 모습으로 다듬어내고 있다. 이발이 끝난 후 어르신이 돈은 내지 않은 채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가위질을 하던 노년의 남자는 웃으며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오십시오"라고 답할 뿐이다. 부강이발소 유운길씨(66)는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과 장애인들, 성당의 70세 이상 신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이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루 10명의 손님 중 2명은 바로 그런 분들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무료 이발 봉사를 해 온 유씨를 그의 이발소에서 직접 만나 살아왔던 지난 얘기와 함께 봉사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무료 이발을 시작한 계기는?
-8년 전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조카 녀석이 부모님이 안 계시고 할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친구 몇 명이 있는데 무료로 이발을 해 주면 안 되겠냐고 나에게 부탁을 해 왔다. 난 선뜻 허락을 했고, 그 후로 그 녀석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머리를 깎아줬다. 그것이 내가 봉사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 그리고 성당의 신부님에게 70세 이상 되시는 어르신들께 무료 이발을 해드리면 어떻겠냐고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내가 조카의 청을 받아들였듯 신부님도 내 청을 흔쾌히 받아주셨다.

▲이용사란 직업을 갖게 된 건 언제인지?
-시간이 진짜 빨리 지난 것 같다. 내 나이 18살 때 시작했으니 벌써 47년째다. 그동안 성주를 비롯해서 왜관 등 여러 곳에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왔다. 여기는(현재 부강이발소) 2000년도에 시작해서 올해로 11년째 운영 중이다.

▲기억에 남는 손님은?
-워낙 많은 분들을 만났기에 기억에 남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름이나 나이까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손님으로 만나서 얼굴을 아는 정도인데, 어르신들 중에서 정기적으로 찾아오시다가 어느 날부터 오시지 않을 때가 있다. 한참 뒤에 다른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보면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또한 여기와 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는 고마울 따름이다.

▲가족들이나 주위의 반응은?
-가족이나 친지들은 내가 봉사를 하는 것이 다들 좋은 일이라고 얘기해 준다. 나 또한 내가 이런 유용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보람을 느낄 때는?
-지금 나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을 뿐더러 어느 순간 봉사는 내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특별한 보람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다만 자식들 다 커서 취직하고, 장가보낸 게 내 생에 큰 보람이다. 특히 5명의 손자들이 내게는 가장 큰 기쁨이며 활력소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왕 마음먹었으니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느님이 허락해 주시는 날까지 계속 할 것이다. 현재 내 나이가 66살인데 앞으로 10년은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 만원 쥐어주기는 그리 쉽지 않지만 이발은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남은 내 삶을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로 봉사하면서 건강하고, 편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프로필 △1944년 성주읍 경산리 출생 △성주초·영남야간고등학교 졸업 △경찰청장, 소방서장, 향토부대장 표창 등 △부인 조춘자씨와 3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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