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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운 전 장로회신학대 교수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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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만이 유별하게 가지는 또 하나의 심리적인 현상은 '한'(恨)이라는 것이다. 한자 '恨'의 구성이 '情'과 마찬가지로 마음 심(心)변인 것이 같은 범주의 심리적 현상임을 가리키고, 그 오른쪽의 '艮'(간)자와 더불어 회의문자(會意文字)를 형성하거니와, '艮'자는 '그치다'(stop) 또는 '끝'(limi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감정이 정지를 하고, 그것이 끝에까지 이르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 뿌리(根)가 땅 속에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 속의 어떤 슬픔이나 상처를 정지시켜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한'도 정과 같이 다른 외국어로는 딱 맞는 말이 없는 것이다. 영어의 'deploring'도, 독일어의 'Groll'도, 프랑스어의 'chagrin'도, 일본어의 'うらみ'(우라미)도 뉘앙스로 일치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말로도 '恨' 자가 들어가는 말로 '한탄'도 있고 '원한'도 있으나, 단지 근사치일 뿐 동의어는 못 된다. 슬픔의 감정(grieve, feel sad)이 있기도 하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한'은 극한 슬픔과 답답함이 오랫동안 쌓여서 마음에 맺혀 있는 상태를 이르는 감정으로서, 흔히 "한이 맺힌다"라고 하고, 오랜 소원이 달성된 상태는 "한을 풀었다"라고 한다. 6·25 전쟁 후 심연옥이 부른 '한강'이란 대중가요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전쟁의 슬픈 역사를 회상하면서 "한 많은 강가에... 가슴에 쌓인 한을 그 누가 아나"라고 노래했고, 손인호는 남북의 분단으로 그리운 고향에 가지 못하는 답답함을 "한 많은 대동강아!"라는 노래로 실향민의 맺힌 한을 풀어 주었다.
'한'은 극한 슬픔이 쌓이고 쌓여서 맺혀 있는 상태를 말하는 점에서 단순한 슬픔이 얼마 동안의 기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과 다르다. 한은 한 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말하므로 이 세상에서 풀 수 없는 한처럼 큰 슬픔은 없다. 그래서 이러한 한은 고대소설의 주제가 되기도 했고, 흔히 텔레비전의 '전설의 고향'에서도 볼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한이 우리 민족의 특별한 공감적 심리가 된 것은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만들어 낸 때문이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사람이 한을 간직하며 살았고, 또 그 한을 끝까지 풀지 못한 채 죽어간 사연이 참으로 많다. 이제 그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마침내 사약을 받고 16세로 죽은 단종의 한은 얼마나 컸으며, 그 단종을 복위시키려고 일을 꾸미다가 일망타진되어 비참한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한은 얼마나 컸으며, 천하의 영웅적 기개를 떨쳤으나 간신의 모함에 걸려 26세의 비명으로 죽임을 당한 남이 장군의 한은 얼마나 컸으며, 병자호란 때 왕으로서 말할 수 없는 굴욕을 당하면서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 군문에 항복문서를 올렸던 인조의 한은 얼마나 컸으며, 안중근 의사를 위시해서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고서도 광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한은 얼마나 컸으랴?
인류의 전쟁사에서 6·25 한국전쟁처럼 참혹하고 처절한 전쟁은 없었다. 그것은 우선 동족간의 민족상잔이란 점에서 그러하고, 그 피해가 제2차 세계대전보다도 더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몇 10만 명도 넘는 전쟁미망인과 전쟁고아를 남겼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때 불렸던 이해연의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인민군의 쇠사슬에 묶이어 다리를 절며 북으로 끌려가는 남편을 보고 부른 아내의 노래였으니, 그들의 맺힌 한은 무엇으로 다 표현하겠으며, 아직도 살아 있는 그들의 아내나 자녀들의 한은 얼마나 클까?
우리 민족에는 또 한 가지 특유한 한이 있으니 그것은 유교적 전통으로 가부장적 사상이 유난히 깊은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갖는 한이다. 한국의 여성들은 층층 시하에서 가난한 시집살이와 남편의 사랑도 못 받고 "울 아부지 날 맹글지 말고 맷방석이나 맹글 것이지"하는 노래와 같이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고 한 평생 여자로 태어난 팔자타령을 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슬픔과 한은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사별하는 것일 것이다. 자녀의 사별 즉 '참척'(慘慽)에 대하여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은 "부모가 돌아가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는 것이다. '慘慽'이란 한자어는 두 글자가 다 마음심변이며, 그 훈독은 '슬플 참'과 '슬플 척'자이니 그 말의 글자 자체가 그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참척의 경우에 흔히 먼저 죽은 자식은 부모에게 최대의 불효를 하는 것이고, 부모는 참척으로 인해 죄인이 된다고도 말을 한다. 이 말의 뜻은 자식은 부모에게 가장 큰 슬픔과 한을 안겨주는 일이기 때문에 불효라는 것이요, 부모가 죄인이 된다고 하는 말은 자식에게 그처럼 큰 불행을 당하게 한 책임이 있다는 자책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생각은 자식에게나 부모에게나 위로의 말이 아니라 도리어 한을 더 지속시켜 주는 말이 되기도 한다.
아, 한(韓)민족에게 한(限)이 없는 한(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