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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서법과 나만의 노하우를 고향에서 전수하고 싶습니다" /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심옥이 씨

최행좌 기자 입력 2013.08.20 09:27 수정 2013.08.20 09:27

특선 2회, 입선 6회 총 12점 획득
2011년부터 국전 초대작가로 활동

ⓒ 성주신문
서예는 화선지 위에 먹을 이용해 점과 선, 획으로 문자를 쓴 조형예술의 한 종류이다. 성주출신으로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심옥이 씨가 있다. 현재는 구미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지만 앞으로 고향에서 후진 양성을 하며 서예를 활성화시켜 나가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지난 13일 심옥이 씨와의 서면인터뷰를 통해 서예에 대한 소개와 초대작가로서의 삶 등에 대해 들어봤다.【편집자 주】

■ 서예부문 국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와 소감은?
전통서법에 대한 오랜 공부와 숙련으로 경북도전 초대작가를 거쳐 마지막 관문인 대한민국서예대전 졸업점수인 10점을 획득해야 초대작가가 될 수 있는데 나는 특선 2회(각 3점), 입선 6회(각 1점) 총 12점을 획득해 2011년 초대작가가 됐다.
초대작가가 되려면 마땅히 검정 받아야 할 관문이 있는데 바로 대한민국서예대전이란 공모전이다. 공모전을 통해 입상을 하게 되면 입선 1점, 특선 3점 등 초대작가가 될 수 있는 점수를 받는다. 총 10점이 되면 이사회에서 초대작가 선정 심사를 받아 그 다음해에 국전 초대작가 증서를 받고 활동하게 된다.
국전 초대작가가 되면 심사와 초대작가 출품, 작품을 판매할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인 활발한 전시회를 갖고 공인으로서 자기 작품에 책임을 진다.
긴 세월 동안 중도에 붓을 꺾지 않고 끝까지 달려 올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산더미 같은 종이와 붓을 버리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감회는 나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30여 년이란 내 인생의 절반을 국전 초대작가란 정체성을 안겨 준 서예, 그 자체가 나의 삶이다.

■ 서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서예를 하면 좋은 점은?
1986년도에 서예에 입문해 어느덧 30여 년이 됐다. 당시 성주초 교직에 있던 큰오빠의 서예휘호를 어깨 너머로 보면서 나의 가치관이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습자를 잘 한다는 칭찬을 했는데 그때부터 서예를 동경했던 것 같다.
외갓집 아저씨가 교장으로 계실 때 좋은 스승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것이 계기가 돼 본격적으로 서예에 입문하게 됐다.
서예를 하면 묵향과 시심, 단전호흡을 통한 정신적·육체적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특히 서예 치료법이 생길 정도로 다섯 손가락을 통한 오감이 뇌에 전달돼 치매를 예방하고 정서를 아름답게 가꿈으로써 자기애가 생기게 된다. 좋은 글을 쓰면서 심신이 수양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학생들에겐 고도의 집중력 훈련이 되고, 자기 인생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후진 양성하면서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20년 학원 경영에 제자와의 추억은 수없이 많지만 나에게 배운 구미여고 교사가 교장선생님이 돼 은퇴한 일이다. 한 제자가 전국공모전에 대상 수상과 정수서예대전에 우수상을 받은 작품을 기증한 것이 계기가 돼 나는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았는데 스승으로서 보람과 긍지를 느꼈다.

■ 기억에 남는 대회나 작품이 있다면?
기억에 남는 대회는 대한민국서예대전과 대구 매일신문서예대전이다.
2011년 대한민국서예대전 졸업에 1점을 앞두고 작품을 출품했는데 특선으로 1차 선정돼 당일 명제 발표, 한문 목간체 28자 한시 휘호를 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매일서예대전 1회 때, 한문 예서 목간체를 출품해 우수상에 선정됐다가 글자 한자가 희귀하다 해서 오자라는 오해를 받아서 낙선됐던 때이다. 그때 작품 규격이 가로 150㎝, 세로 200㎝ 초대형으로 몇 날 며칠을 새벽까지 연습하고 완성해 출품한 작품이었다. 당시 어린 두 딸애를 집에 두고 한 획 한 획 그을 때 마다 가슴이 에이고 아이 얼굴이 아련해서 집중하기가 힘들었지만 모질게 견디어 출품했는데 오자가 있어 낙선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가 서예를 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성경 고린도전서 13장을 초서체로 병풍 12폭에 쓴 대형작품이다. 하나님 은혜로 두 달 만에 완성했고 혼신을 깃들여 쓴 작품으로 완성하고 나서 스스로 경이롭게 느꼈던 작품이다.

■ 출향인으로서 고향 성주는 어떤 의미인지?
고향 성주는 나에게 애틋한 친구와 같다. 문득 보고 싶으면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이다. 특히 성밖숲은 나의 유년시절 놀이터였다. 숲 옆에는 우리 밭과 논이 있어서 누렇게 벼가 익을 때 허수아비 방울을 흔들며 새를 쫒던 기억과 모래펄에 농사를 지으면 아기머리통만한 감자를 줄줄이 캐던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또한 성주는 선비고을로 세종대왕태실이 있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며, 가야산과 가천은 명산대천이라 할 수 있다.

■ 인생철학과 평소 여가생활은 어떻게 보내는지?
인생철학이라 하면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성경을 믿는 믿음이다.
평소 시간적 여유가 되면 여행하며 작품을 구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또한 서예가 나의 직업이라면 취미와 특기는 문학이다. 정식등단한 아동문학가로서 동화와 동시를 창작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과 하고 싶은 말은?
고향이 참외 농사의 경제뿐만 아니라 선비 고을답게 묵향과 시심이 함께 조화를 이루면 좋겠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 읽는 주경야독, 형설지공을 이루고 건강한 성주, 이름대로 별과 같이 빛나는 고을이 되길 소망한다.
귀농자를 고향이 환영하고 지원하듯이 나는 서예, 한자가 내 농사이다. 국가공인한자자격검정기관 대한검정회 지부장으로 10년 전부터 성주에 한자 자격검정시험을 유치해 지금은 공인급수도 많이 배출되고 있다.
나는 귀농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서예는 나의 농사다. 귀향해 고향친구와 후진들과 함께 경제와 예술과 학문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아름답고 건강한 성주, 창조하는 고향을 만들어가고 싶다. 전통서법과 평생의 나만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발전시키고 싶다. 함께 예술혼을 불태우며 힘겨운 인생을 서로 나누고 싶다. 참외로 유명한 성주, 먹 냄새도 진동하는 성주, 문물이 공존하는 성주로 함께하면 좋겠다.
최행좌 기자

심옥이 작가 △1953년생 성주읍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과 졸업 △현 한국한문교사연수원 서예지도교수, 현 대한검정회 김천지회장, 현 흰돌서당 서예학원장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정수서예문인화대전 초대작가, 경상북도서예대전 초대작가, 경상북도서예대전 심사 및 이사, 인터넷 서예대전 초대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등 활동 △대한민국정수서예문인화대전 초대작가상 등 다수 수상 △삼성전자 초대 개인전 △남편과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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