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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재 문화재로 문화관광 콘텐츠를 더하다 -10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8.07.24 11:14 수정 2018.07.24 11:14

10회 청천서당

성주군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산, 수많은 명현거유를 배출한 유림의 본고장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는 곧 타 지역과 차별화 할 수 있는 우리 지역만의 특화된 강점이자 경쟁력으로 육성 발전할 수 있는 근간이 된다. 이에 지역 소재 문화유산에 대한 소개 및 역사적 배경을 보도함으로써 지역민들로 하여금 자긍심 및 애향심을 제고할 수 있도록 선도하고, 아울러 문화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1회 법수사지삼층석탑
▷2회 성주향교 대성전
▷3회 선석사 영산회괘불탱
▷4회 성주향교 대성전
▷5회 명주짜기
▷6회 금봉리석조비로자나불좌상
▷7회 회연서원 및 한강정구신도비
▷8회 심산 김창숙 생가
▷9회 성산동고분군
▶10회 청천서당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1호 청천서당
ⓒ 성주신문


↑↑ 대가면 사도실에 위치한 청천서원 전경
ⓒ 성주신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1호인 청천서당은 대가면 칠봉리 사도실 마을에 있다. 마을 안쪽에 심산 선생의 생가지가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한강 정구 선생과 사림들이 김우옹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한 청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대가면은 역사상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던 큰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 '대가(大家)'란 지명도 큰 인물 즉 대가들이 많이 태어난 곳이라는 뜻이다. 대가면 칠봉리의 사도실은 의성 김씨 집성촌으로 동강 김우옹 선생과 심산 김창숙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동강 김우옹(1540~1603)은 조선 중종에서 선조 때까지 활동했던 문신이자 학자였다. 선조 즉위 이후 권력을 잡고 있던 동인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명이다. 1589년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인해 대대적인 동인의 처벌이 이뤄지게 되면서 정여립과 함께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이유로 유배되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면서 사면돼 왕을 옆에서 모시며 호종했고, 이후에 청주로 옮겨와 살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강 정구 역시 성주 출신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남인 예학의 기틀을 잡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동강보다 세 살이 어린데 함께 성주에서 자란 절친한 사이였기에 동강이 죽은 후 그를 기리기 위해 사림들과 함께 이곳에 서원을 건립하게 됐다.

청천서원은 조선 영조5년(1729)에 창건됐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을 비켜가지 못하고 훼철됐다가 그후 동강의 12대 후손이며 심산 김창숙 선생의 아버지인 김호림에 의해 종택의 사랑채를 서당으로 꾸미고 청천서당으로 이름을 바꿔 다시 지었다.

서당으로 중건된 이후 1910년 김호림의 아들인 심산이 교육구국운동을 위해 서당을 수리해 '성명학교'라 부르고 후진 양성을 위한 교사로 활용하면서 청천서당은 일제강점기 애국계몽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강당의 현판에는 '청천서당'과 '성명학교'가 함께 붙어 있다. 서당은 장방형 토석담을 두르고 서쪽에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이며,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담장 밖에는 김우옹의 불천위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청천서당에서는 100m 이내에 있는 심산 김창숙 생가도 바로 보인다.

청천서당은 1991년 5월 1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1호로 지정됐다.

그후 1992년 유림과 후손들의 힘으로 서당의 위치를 옮겨 현재의 청천서원 건물로 새롭게 복원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대가면 칠봉리 사도실 마을의 산자락에 자리한 청천서원은 다소 높은 듯 웅장한 느낌의 첫인상에, 정면에는 연못과 구름다리, 갖가지 모양의 바위와 꽃나무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세심교라 이름 지어진 아치형 다리도 화려하다.

대문격인 수정문(守正門)을 지나면 강학 공간이 나온다. 현판 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이다.

청천서원 내에는 속 자치통감 강목의 판목을 보관해 둔 경정각이 있다. 중국의 역사서 자치통감을 바탕으로 동강 김우옹이 선조때 기축옥사에 연류돼 유배를 갔던 곳에서 편찬에 착수해 6년 만에 완성해 20권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판목의 재료는 배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듯 한강 정구와 함께 '양강'으로 일컬어지는 동강 김우옹을 배향하는 곳이 청천서원이다.

성주를 대표하는 중심서원 두 곳, 바로 한강 정구의 회연서원과 동강 김우옹의 청천서원이다.<끝>


취재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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