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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청천서원과 나의 삶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19.10.22 09:38 수정 2019.10.22 09:38

↑↑ 장 호 욱
성주불교연합 신도회장
ⓒ 성주신문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사도실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1호로 지정된 청천서원이 있다. 이 서원은 영조5년(1729) 한강 정구와 유림들이 동강 김우옹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서원으로 동강은 한강 정구와 함께 양강으로 불리는 성주를 대표하는 유학자다.

청천서원 가장 안쪽에 위치한 숭덕사는 동강 선생을 봉향하는 사당이며, 앞쪽에는 강당인 일중당이 있다. 이곳은 심산 김창숙 선생이 애국구국운동을 위해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가운데 너른 마당을 사이에 두고 동재인 소원재, 서재인 경성제가 마주보고 있으며 문루인 수정문이 손님을 맞이한다.

또 속자치통감강목 판목이 보관된 경정각이 있다. 이 판목은 총 673개의 배나무 판목에 중국 송 태조 원년부터 명 태조 원년까지 408년간의 중국역사를 편년체로 기술한 것으로, 1991년 5월 14일 청천서원과 함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됐다. 이는 동강이 기축옥사에 연루돼 함경도 회령에 유배된 선조22년(1589) 집필에 들어가 1595년 36권 20책으로 완성한 것으로 오랫동안 초고상태로 전해지다가 영조47년(1771) 왕명으로 내각활자로 출간했으며, 목판본은 순조8년(1808) 청천서원에서 판각·출간됐다. 이런 소중한 문화유산이 보존된 장판각이 성주에 있다.

동강 김우옹은 1540년에 태어나 남명 조식, 퇴계 이황 선생을 사사했고, 1567년 문과에 급제해 1582년 홍문관제학을 거쳐 병조·이조·예조 참판을 두루 역임했다. 아울러 왜란과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륜을 발휘했으며, 후학 양성에 힘쓰다가 선조36년(1603) 별세했다. 동강은 널리 인재를 등용하도록 임금에게 천거했으며 시무책을 자주 올리는 등 학문적 문제와 정치시책에 관심을 갖고 정치도의를 밝히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동강을 배향하던 청천서원이 고종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돼 1883년 유생 김경락 등이 서원의 복원을 요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동강의 12대손이자 심산 김창숙 선생의 부친인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서당으로 꾸며 청천서당으로 명명했고, 1910년 심산은 이 서당을 수리해 '성명학교'라는 현판을 걸고 일제시대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그 정신으로 민족사적 대학인 성균관 대학을 설립, 새 시대 동량지재를 길러 내는 교육자로서 초대 총장으로 부임한다.

이처럼 심산의 삶은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투명한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본받을 수 있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며, 이러한 역사적인 인물을 기리는 지역의 문화재는 관심을 갖고 보호·관리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청천서원은 지리산의 청학동처럼 청소년의 정신을 수양하기 위한 시설로 거듭나기 위해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며 특히 후손인 김상호(법명:법조, 호:일선당) 선생이 유·불·선에 능통하시어 한문, 예절, 다도, 향도, 기공수련 등 각 분야 문화교실을 개원할 계획이며 특히 동강 선생, 심산 선생을 민족정신으로 선양하겠다는 선양회를 발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침 심산 테마공원 조성에 국비 237억이 확정돼 경향각지 뜻있는 지도자들이 함께할 큰 틀을 마련하고 있다. 필자도 이타행, 노후에 남이 득되는 삶, 향과 초가 되겠다는 보현 행원 보살행을 살고자 귀향(8년 전)한 그 마음을 이곳에서 찾고자 한다.

부처는 법당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에서 찾을 것이다.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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